무대 위 6인용 가족 식탁에 다섯명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바라보는 시선은 엉켜있다. 아버지는 중국어 공부를 위해 모니터에 시선이 고정됐다. 아들은 거실 라디오를 틀며 시끄럽다는 엄마와 티격태격한다. 딸은 오빠에게 야한 잡지를 치우라며 욕을 퍼붓는다.
다음달 14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되는 연극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은 가족 공동체의 가장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지식과 논리에 미쳐있는 크리스토퍼(남명렬 분)네 가족 이야기다. 추리 소설가의 길로 들어선 아내 베스(남기애 분)와 언어학 석사 논문을 쓰고 있는 큰 아들 다니엘(김준원 분), 오페라가수 지망생 루스(방진의). 그리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막내아들 빌리(이재균 분)가 식탁에서 논쟁을 벌이면서 극이 시작된다.
빌리는 청각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다른 청각 장애인들이 수화로 소통하는 것과 달리 빌리는 ‘일반인과 똑같이 자라길 원하는’ 부모 덕분에 입 모양을 보고 대화를 이해할 수 있다. 빌리는 가족의 관심을 받으며 잘 융화된 듯 보이지만 속으론 곪아있다. 여자친구 실비아(정운선 분)를 집에 초대하면서 상처는 터진다. 청각을 잃어가는 실비아와 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가족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해왔다고 느낀다.
영국의 극작가 니나 레인은 ‘자신의 아이도 청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길 바라는’ 한 청각장애인 부부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이 작품을 썼다. 레인이 하고자 하는 말은 이러하다. “가족이란 그 구성원들이 믿는 것, 문화, 언어를 그대로 전수하고 공유하고 싶어 하는 하나의 부족이다.”
크리스토퍼 가족은 이런 면에서 각자의 입장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서로에게 표출해내는 일그러진 모습을 보여준다. 베스가 빌리를 보며 “이해해”라고 말하지만 그녀의 속마음(이해 못하겠어)이 스크린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된다. 실비아에게 “별 일 없니?”라고 묻는 질문에는 “너 혹시 임신했니?”라는 전혀 다른 의미가 숨겨있다.
극 후반 어눌하게 말하던 청각장애인 빌리와 실비아가 똑똑하고 정확한 언어로 말을 하고 다른 가족들의 대화는 들리지 조차 않는 반전 상황이 인상적이다.
영국식 유머와 가족 사이에 오가는 수위 높은 대화는 국내 정서에 어울리지 않는 듯한 느낌을 준다. 장애 연기 중엔 대사 전달력이 다소 떨어진다. 그럼에도 가족의 의미라는 보편적인 내용과 장애를 소재로 담담하고 사실적인 연극을 꾸몄다는 점은 높이 살만하다. 대사와 자막을 적절히 사용해 흥미롭게 연출한 점도 색다르다. 3만5000∼5만원(070-4141-7708).
김미나 기자
소통 단절된 일그러진 가족의 자화상… 연극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
입력 2014-11-18 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