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지 9일로 25주년이 된다. 통일 이후 동서독의 상생 균형발전을 위해 정부 주도하에 온 국민이 뼈를 깎는 노력을 한 끝에 독일은 현재 유럽연합(EU) 핵심 국가이자 미국 중국 일본에 이어 세계 4위의 경제대국 반열에 올라 있다. ‘히든챔피언’으로 대표되는 강소기업들을 기반으로 한 탄탄한 경제력은 물론 예술문화, 스포츠클럽 등 여러 방면에서 두드러지는 모습이다.
◇세계 4위 경제대국됐지만 동서독 격차 여전=2000년대 초까지 통일 후유증에 시달리던 독일은 ‘유럽의 병자’로 통했다. 경제 시스템이 합쳐지면서 동독 지역의 임금은 통일 이후 1년 만에 50%까지 치솟았다. 임금 폭등은 상품가격 상승과 기업들의 투자 부담으로 이어져 내수 시장은 한동안 갈피를 잡지 못했다.
독일 전체로 봤을 때 경제 규모는 통일 직후인 91년에 비해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독일 연방 통계청이 집계한 국내총생산(GDP)을 살펴보면 91년 1조5847억 유로에서 지난해 2조8141억 유로(3807조원)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지역 간 경제적 격차도 최근엔 많이 줄었다. 동독 지역의 1인당 GDP는 통일 직후 서독 지역의 33%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66% 수준까지 상승했다.
하지만 장벽의 흔적은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있다. 동독 지역의 여러 지표는 서독에 못 미친다. 동독의 지난해 실업률은 10.3%로 서독의 6.0%보다 다소 높다. 임금 수준도 여전히 차이가 난다. 일반적으로 동독 지역의 임금은 서독 지역의 3분의 2 수준에 불과하다. 독일 민간 경제연구소 이포(Ifo·Institut fur Wirtschaftsforschung)는 1인당 세수도 동독 지역은 서독 지역(1837 유로)의 절반가량인 937유로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문화 차이와 통일 이후 심리적 괴리도=두 지역 간 문화·심리적인 괴리도 풀기 어려운 문제다. 동독 지역에는 공산주의 체제의 분위기가 여전히 남아있다. 전통적 가정의 가치를 강조하는 기독교적 색채가 엷어졌고 여성들도 노동 현장에 나가는 경우가 많아 서독 지역에 비해 공공 보육시설에서 돌보는 3세 미만 영·유아 비율이 높다. 동독 지역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3%로 서독(20%)보다 고령화 현상이 심하다.
독일 베를린-브란덴부르크 사회과학연구센터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통일 이후 경제적 상황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묻는 질문에 동독 지역의 경우 응답자의 41%가 ‘나아졌다’고 답한 반면 서독 지역은 24%에 그쳤다. 서독 지역에서는 절반에 가까운 47%가 ‘나빠졌다’고 했다. 통일 자체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평가할지 몰라도 통일로 인해 경제적인 상황은 악화됐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인 2019년까지 동서독의 삶의 수준이 같아질 것으로 기대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는 응답이 동독 지역과 서독 지역에서 각각 66%와 53%로 절반 이상이었다. 보고서는 “동독 주민들은 통일로 발전됐다고 보고는 있지만 여전히 서독 주민들과 질적인 ‘동일화’를 기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갑작스러운 통일에 정부·기업·국민 고통분담=독일이 이처럼 오랜 기간 후유증을 겪은 것은 충분한 준비 없이 통일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많은 독일인들이 “통일은 생각보다 갑작스러웠다”고 입을 모은다. 1961년 동·서 베를린 경계선에 약 45.1㎞ 길이로 세워진 베를린 장벽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개혁과 개방을 밀어붙이고 가난과 억압에 시달리던 동독 시민들의 투쟁이 격화되면서 89년 11월 9일 철거됐다. 그리고 1년이 채 안 된 이듬해 10월 독일은 통일됐다.
통일 이후 독일은 두 지역의 문화 및 경제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이어갔다. 정부는 경제 균형을 위해 1991년부터 소득세나 법인세에 추가로 세금을 부과하는 연대세(稅) 제도를 도입했다. 연대세로 거둬들인 수입의 절반은 동독 주민들의 연금이나 실업급여 등 사회보장성 지출에 쓰였다.
◇가야 할 길은 아직도 멀다=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신성원 연구부장은 지난 3월 낸 ‘통일 전후 독일 경제 상황과 독일 통일이 한반도에 주는 함의’ 보고서에서 “독일은 2009년까지 10년간 1조9000억 달러(2076조원)를 통일비용으로 지출했고 현재도 전체 세입의 10%에 해당하는 돈을 동독 지역에 대한 이전지출로 지불하고 있는데 이는 GDP의 4∼5%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독일 장벽 붕괴 25주년] ‘유럽의 병자’에서 ‘넘버 4’ 경제 대국으로
입력 2014-11-08 03:31 수정 2014-11-08 14: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