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호의 세상 읽기] 누가 원수를 갚으라 하는가

입력 2014-11-08 02:30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게 될까.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공통점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긍휼과 온유 그리고 화평을 들 수 있다. 자신이 완전함에서 거리가 먼 존재라는 사실뿐만 아니라 타인도 마찬가지라는 자각이다. 그리고 이런 자각으로부터 긍휼, 온유 그리고 화평이 나오게 된다. 스스로 이렇다 할 노력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어나는 마음과 태도의 변화에 대해 성경은 믿는 자에게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기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긍휼, 온유 그리고 화평은 늘 지속되지 않는다. 인간은 저마다 뿌리 깊은 좋지 못한 습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성급한 성격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벌컥벌컥 화를 내는 성격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늘 부정적인 것만 지적하는 데 익숙한 습관일 수도 있다.

성경은 이를 두고 ‘쓴 뿌리’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쓴 뿌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온유와 화평 그리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지속되지 않는다. 쓴 뿌리로 인해서 혼란을 경험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경험의 끝자락에서 항상 “인간은 너나 할 것 없이 죄인이고 뿌리 깊은 죄로부터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이구나”라는 사실을 거듭해서 확인하게 된다.

인간은 한없이 부족한 존재다.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우리가 확인하게 되는 일은 세상의 혼란스러움에 대한 이해이다. 세상은 인간의 죄성과 혼란스러움으로부터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곳이라는 자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길에 들어선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과 구별돼야 한다. 이는 교회가 세상과 달라야 함을 말한다. 세상이 소란스럽더라도 교회는 그런 부분으로부터 상당 부분 자유로워야 한다.

그러나 교회도 사람들이 모인 단체이기에 인간들의 속성으로부터 크게 자유로울 수는 없다. 오랫동안 믿음의 길을 달려온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인간이기에 이따금 어처구니없는 실수나 실책을 범하는 일이 일어나곤 한다. 이런 실수를 두고 “어떻게 저런 좋지 못한 일들이 믿는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을까?”라고 낙담하게 된다. 그런데 그런 실수들이 평신도가 아닌 사람들에게서 일어나게 되면 그 실망스러운 감정을 추스르기 힘들다. 왜냐하면 그들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믿는 자의 대열에 들어선 다음에는 그런 실수를 목격할 때는 예전의 우리와는 달라져야 한다. 이미 믿음으로 인해 세상과 구별되어진 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 2:20)라는 말씀으로 이를 말해주고 있다. 믿음의 대열에 들어서기 전이라면 인간적인 실수를 범한 사람을 반복적으로 그리고 가혹하게 비난할 수 있다. 그러나 믿음의 대열에 들어선 다음이라면 우리는 인간의 연약함과 죄성에 더 주목하게 된다. 예를 들어 오랜 시간 동안 하나님의 일을 해 온 사람이라 하더라도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실수 때문에 세상 사람들의 비난을 흠뻑 뒤집어쓸 때가 있다. 그런 문제들을 처리해 감에 있어서 세상은 가혹한 정죄를 당연하게 여기게 된다. 죄를 범하였기에 당연히 죄의 대가를 지불하도록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는 점에 대해 어느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교회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회는 인간적인 방법을 통한 정죄에 대해서 조심스러워야 한다.

예수님을 구주로 모신 다음에 일어난 가장 큰 변화를 들자면 바로 이런 점이라고 생각한다. 너나 할 것 없이 특정 상황에서 특정한 실수를 누구든지 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죄를 정죄하는 것이야말로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세상 사람들이라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당사자의 연약함을 긍휼히 여기고 그를 위해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자신도 그런 일에 빠질 수 있는 유혹의 덫으로부터 자신을 그리고 가족을 그리고 지인들을 구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늘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며”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가. 성경은 우리를 대신해서 공의의 하나님께서 죗값을 치르게 할 것임을 여러 곳에서 약속하고 있다. 성경에는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은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롬 12:19)라는 약속이 있다. 이와 더불어 “내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롬 12:20)라는 말씀이 있다.

이따금 믿는 자들 가운데 세상 사람들보다 더 집요하게 정죄에 골몰하는 경우를 볼 때마다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한두 번도 아니고 병적으로 정죄에 매달리는 경우를 보게 된다. 세상적인 방법으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방법이나 하나님의 길은 아니다. 집요한 정죄는 믿는 사람들을 믿음의 길에서 떠나도록 재촉하기도 하고 세상 사람들이 믿는 자를 손가락질하게 하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교회는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한다. 사회가 복잡하고 어려울수록 믿는 자는 세상의 방법과 하나님을 방법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공병호경영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