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구멍’ 환풍구… 27명 순식간에 삼켜

입력 2014-10-18 04:22

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났다. 17일 오후 판교테크노밸리 야외공연장을 찾은 최모(15)군은 “포미닛이 무대에서 내려올 무렵 무대 오른쪽 계단 위 환풍구에서 ‘쾅’ 하고 큰 소리가 났다. 처음에는 환호성인줄 알았는데 곧 ‘사람이 빠졌다’는 소리가 들렸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너무 깊은 환풍구 속…구조 지연=관객들이 떨어진 환풍구는 무대에서 15m가량 떨어진 곳에 있었다. 무대보다 높고 가까워 10대부터 50대까지 많은 사람들이 일찍부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가로 5m, 세로 3m가량의 환풍구는 바둑판 모양의 철제 덮개 6개로 덮여 있었다. 수십명이 올라서자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덮개가 무너지면서 27명이 중심을 잃고 18.7m 아래 지하로 추락했다.

인근 상인 조모(65·여)씨는 “환풍구 쪽에서 연기 같은 게 올라오기에 처음엔 담배연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쪽에 몰려 있던 사람들이 ‘어! 어! 어!’ 하면서 헛손질을 하더니 앞으로 고꾸라질 듯하다 갑자기 밑으로 사라졌다”고 했다.

복잡한 구조 탓에 환풍구 안으로 진입이 쉽지 않았고 구조가 늦어지면서 피해도 커졌다. 사고 직후 출동한 소방구조대는 환풍구 위에서 로프를 내려 구조를 시도했다. 그러나 복잡한 구조와 예상치 못한 깊이 탓에 포기하고 건물 지하 4층 주차장으로 내려가 환풍구와 연결하는 벽을 뚫고 진입했다. 소방 당국 관계자는 “환풍구 바닥에는 추락한 사람들과 철망이 뒤엉켜 있었다”면서 “높은 곳에서 떨어진 데다 무거운 철망 때문에 희생이 컸던 것 같다”고 말했다.

◇안전요원도 제대로 배치되지 않은 공연장=목격자들은 주최 측도 환풍구에 올라선 사람들에게 주의를 줬다고 했다. 한 목격자는 “사회자가 위험하다고 내려오라 했는데도 관람객들이 듣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다른 목격자는 “스태프들이 ‘사람이 많이 몰려 환풍구 위에서 도로로 떨어질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했다”며 “주최 측도 환풍구 덮개가 무너지리라곤 생각하지 못한 듯하다”고 말했다.

인근에 안전요원이 배치됐다면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도 있다. 무너지기 전 상당 시간 동안 덮개가 하중에 눌려 휘어져 있던 모습을 여러 사람이 목격했다. 공연장에는 무대 앞쪽과 관람석 사이에 안전요원 10여명이 배치됐지만 불과 15m 떨어진 환풍구 주변에는 없었다. 소방 당국과 경찰은 환풍구 덮개의 부실시공 가능성도 조사 중이다.

부상자들이 후송된 병원에서는 가족들의 애타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오후 9시쯤 성남 제생병원에선 중년 여성이 “○○야 뭐라고 말 좀 해봐” 하고 흐느끼며 응급실로 뛰어 들어갔다. 다른 부모들도 잇따라 휴대전화를 든 채 병원에 들어가 의료진을 상대로 인상착의를 설명하며 발을 굴렀다.

희생자들은 대부분 인근 회사 직장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직장인 김모(41)씨는 “저녁을 먹고 회사로 들어가는 길에 잠시 공연을 보러 간 사람이 많았다”고 말했다. 인근 회사 출입증을 목에 건 직원들이 병원을 드나들며 동료들을 애타게 찾는 모습도 여럿 발견됐다.

◇입주기업 위한 문화행사=‘제1회 판교테크노밸리 축제’는 경기도와 경기과학기술진흥원이 주최하고 이데일리와 이데일리TV가 주관했다. 무대 설치와 관객 통제 등은 경기과학기술진흥원 판교테크노밸리지원본부에서 담당했다. 총 예산 2억원을 들인 행사다.

경기도 관계자는 “경기과학기술진흥원이 그동안 판교테크노밸리 입주기업 직원을 위해 문화예술 공연을 해왔는데 이번 축제도 그 연장선에서 지원하게 된 것”이라면서 “이데일리TV가 축제에 대한 지원을 요청해 응했고 예산 집행은 아직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공연에는 오후 5시부터 8시까지 포미닛, 티아라, 정기고, 투빅, 체리필터 등 걸그룹과 가수들이 출연토록 돼 있었다. 공연장 옆 체험공간에선 오후 4시30분부터 디제이(DJ)의 공연과 함께 무료로 맥주를 나눠주는 행사가 진행됐다. 관객들이 참여하는 다트 게임, 빙고 게임도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오프닝 무대를 담당한 5인조 걸그룹 포미닛의 공연 때 환풍구 덮개가 무너지면서 행사는 전면 중단됐다. 포미닛 소속사 큐브엔터테인먼트는 “포미닛 멤버는 모두 사고를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무대를 마치고 나왔다. 서울로 복귀하고 나서야 소식을 들었다”고 밝혔다.

성남=조성은 전수민 강희청 기자

사상자 명단(17일 23시 30분 현재)

◇사망자(16명)=김민정(20대·여) 김성대(40) 김효성(20대) 강희선(20대·여) 방극찬(40대) 윤병환(49) 윤철(35) 이영삼(45) 이영선(20대) 이인영(39) 장혜숙(30대·여) 정연태(47) 조대희(35) 홍석범(29) 신원미상 2명

◇부상자(11명)=김소연(20·여) 김한울(29) 김홍철(41) 윤대성(40) 이미정(31·여) 장세종(36) 정국화(30·여) 정석용(45) 천재웅(41) 최윤석(50) 한은희(32·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