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하루 만에 꼬리내린 김무성 대표

입력 2014-10-18 02:50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개헌논의 불가피’ 발언 및 번복 과정에서 대한민국 정치의 후진성을 또 한번 발견하게 된다. 집권당 대표의 무책임하고도 유약한 언행과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그것이다. 김 대표는 17일 자신의 전날 상하이 발언이 불찰이었음을 강조하며 “대통령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실언에 따른 해명인지, 치고 빠지는 전술인지 정확히 알긴 어렵지만 참으로 어이없는 소동이다.

김 대표의 해명성 사과에 진정성이 있다면 상하이 발언은 너무나 무책임했다. 무려 42명의 수행기자들 앞에서 국가적 핵심 어젠다인 개헌 얘기를 장시간 해놓고 언론에 크게 보도될 줄 몰랐다는 게 말이 되는가.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와 연정 필요성까지 언급하는 걸 보고 언론이 작심 발언으로 해석한 건 당연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개헌반대 입장에 당당히 맞서는 모습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할 만도 했다. 그것이 진심이 아니었다면 보도 자제를 요청했어야 했다.

김 대표가 불과 하루 만에 회군하는 모습에서 제왕적 대통령제의 실상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자신의 발언 번복이 청와대 입김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믿기 어렵다. 명색이 집권당 대표가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개헌 얘기를 해놓고 마치 큰 죄나 지은 것처럼 대통령에게 용서를 구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수평적 당청 관계를 구축하고, 청와대에 할 말은 하겠다고 한 김 대표의 3개월 전 전당대회 때 공약은 물 건너간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통령의 이런 무소불위 권력을 분산시키자는 것이 개헌의 가장 큰 목적이다.

김 대표의 후퇴에도 불구하고 개헌논의 봇물은 막기 어려울 것이다. 정기국회에서 세월호 3법을 처리하고, 공무원연금 개혁 등 당면 핵심 국정과제에 대해 큰 방향을 잡으면 개헌논의를 미룰 이유가 없다. 국회의원 과반수와 국민 70% 이상이 개헌을 지지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12월부터는 마땅히 개헌의 방향을 공개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그때는 김 대표도 당연히 나설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