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원으로부터 받은 입학사정 심의 결과를 보면 나는 입학 불가 대상이 아니었다. 고려대(경영학과) 및 성균관대 경영행정대학원(EDPS과정) 이수과목 중 미적분이 없었다. 그러나 미국 NPS 대학원의 전산학 석사과정은 미적분 과목을 전공 시작 전에 이수해야 한다. 대학원에서 제시한 옵션은 한 학기 먼저 와서 이수하든지 한국에서 미적분 과목을 이수한 성적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육군본부에서는 일방적으로 불합격 처리를 했다. 미 대학원으로부터 확보한 자료를 갖고 육군본부에 재심의 요청을 했지만 이미 심의가 끝났고, 나 대신에 유학 갈 대상자가 확정됐다며 결과를 번복할 수 없다고 했다. 정말 억울했지만 힘들게 1년을 기다리며 다시 준비했다. 그 기간 미적분 과목을 이수했고 이듬해 국방부 유학시험에 다시 응시해 합격했다. 두 번이나 유학 선발시험에 합격한 후 미 대학원으로부터 입학승인을 받아 유학길에 올랐다.
남들은 하나같이 쉽게 풀리는데, 나는 전산장교로 전환할 때나 유학 선발 과정에서도 무엇 하나 그냥 되는 게 없이 장애물을 넘고 또 넘어야만 했다. 그렇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어떤 경우에도 문제를 정확하게 알면 답을 알 수 있다는 귀한 교훈을 얻었다. 살아가면서 어떤 위기나 난관에 부딪쳐도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짚어내면 절반은 성공한 것이다. 그 다음은 목표를 달성하는 데 문제가 되는 장애물을 해결할 수 있는 ‘최적의 해법’을 찾아 도전하면 된다. 만약 내가 감당하기 벅찬 큰 문제에 맞닥뜨리면 내 능력으로 할 수 있도록 분해하고, 단순화시켜 내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그렇게 도전하면 반드시 목표를 성취할 수 있다. 이것은 내가 숱한 장애물을 극복하면서 터득한 삶의 지혜다.
시행착오도 겪었고 때로는 나의 의지를 시험하려는 큰 장벽들과 마주하기도 했다. 이럴 때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규정이나 제도가 잘못됐다고 불평하거나 내 능력으로 안 된다고 쉽게 포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좌절하고 포기하기보다는 ‘이 순간에 이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뜻이 무엇입니까. 왜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면 더욱 냉철하게 문제를 정의하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주셨다. 중요한 결단의 순간에 내 선택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먼저 찾고 포기하지 말자.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는 절대적 긍정과 절대적 희망이었다. 장애물을 극복하고 때로는 아픔을 겪었던 경험은 훗날 청와대와 KAIST에서 다가올 위기를 능히 극복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나를 트레이닝하기 위한 오묘한 계획이었음을 한참 후에야 깨달았다.
인생을 살아가며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위기가 다가올 때 ‘내 능력으론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이것이 내 운명인데’라고 포기했다면 오늘날 주대준 전 청와대 경호차장, KAIST 부총장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떤 극한의 상황에서도 포기하지만 않으면 내 운명까지도 바꿀 수 있다는 믿음과 확신을 가졌다. 그리고 되는 길을 찾아 노력했다. 1985년 김포공항에서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가는 동안 힘들었던 소년 시절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부모를 잃고 어찌할 바를 몰랐던 시절, 고아원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힘들었던 시절에도 포기하지 않았고 막연하게나마 품었던 ‘어른이 되면 미국으로 공부하러 가야지’라는 꿈이 현실로 이루어진 것이다.
꿈을 품고 주님만 바라보고 담대한 믿음으로 정진하면 하나님께서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새 힘을 주신다는 소중한 교훈을 터득했다. 이사야 40장 31절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는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태평양을 건넜다.
정리=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
[역경의 열매] 주대준 (11) 고아원 시절의 꿈 미국 유학 ‘절대 긍정’으로 이뤄
입력 2014-10-20 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