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천국 소망하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입력 2014-10-14 02:14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죽음은 재수 없는 단어가 아니라 소중한 단어입니다. 성경은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지만 그것이 재수 없다며 늘 잔칫집만 찾는 사람은 미련한 사람이라고 합니다(전 7:4). 죽음 앞에서 진정한 지혜를 얻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정리해야 할 시기를 맞이하시는 분들이 계신가요. 건강하게 오래 사시라는 말보다 “천국 준비하시고 예수님 생각하시라”고 권면해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오래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유언장을 써 보셨습니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말이랍니다. 이는 우리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에 매달려 인생을 살았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천국이 실제인 것처럼 죽음도 실제입니다. 죽음이 끝이라면 차라리 좋겠습니다. 또 천국에 가든지 못 가든지 하는 거라면 괜찮겠습니다. 천국에 못 갈 경우 아쉬우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지옥이 있다는 겁니다.

프랑스 사상가 볼테르는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이나 천국과 지옥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외치며 살다가 죽는 순간에 “이제 나는 지옥으로 간다”며 죽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리스도인들마저 천국과 지옥이 실제가 되지 못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무엇을 보면 알 수 있을까요. 지금 이 세상에서 사는 모습을 보면 압니다. 천국 갈 사람들은 이 세상을 천국에서 사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을 넘어 천국을 바라보는 눈을 떠야 합니다. 성경은 천국을 발견한 사람들이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았다’고 말합니다. 천국을 바라보는 눈이 열려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천국 관점에서 보면 크고 작고 많고 적은 게 소용이 없습니다. 세상의 어떤 욕심도, 즉 무엇을 갖고 싶다든지 어디를 가고 싶다든지, 무엇을 먹고 싶다든지 하는 모든 욕심들도 천국보다 더 못하다고 생각하면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이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것들을 다 모아도 천국에서 가장 하찮은 것만 못합니다. 그러나 천국이 실제가 되지 못하니까 모두 다 “예수 믿고 천국 가기 원하느냐”고 물으면 “아멘” 하면서도 “지금 당장 가기를 축복한다”고 하면 “아멘” 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대한 소망이 확실하지 않고 이 세상이, 그리고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이 천국보다 더 좋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천국믿음’은 입이 아니라 삶으로 살아야 합니다. 천국에 대해 눈을 뜨면 세상의 모든 성공에 대한 가치관이 바뀝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근심하지 말아야 할 근거는 천국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편안한 삶이 아니라 어려운 삶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누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습니까.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고 우후죽순처럼 일어났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이 제자로 받아 주지 않을 것을 걱정할 정도였습니다. 이는 천국에 대해 눈을 떴기 때문입니다. 죽음 너머의 천국을 향해 눈이 떠졌기 때문입니다. 천국 보는 소망의 눈으로 날마다 승리하기를 축복합니다.

정용비 전주온누리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