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주대준 (7) ‘이기자부대’ 첨병 소대장에게 보여주신 기적

입력 2014-10-14 02:14
이기자부대 소대장 시절 주대준 KAIST 교수(앞줄 가운데)가 분대장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3사관학교 입교 직전 ‘고시 공부를 끝내고 군에 가야 하나’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때도 온갖 핑계로 군에 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야망과 출세욕으로 가득 차 있던 나를 하나님께서는 3사관학교로 보내 완전히 개조시켰다.

소위로 임관된 이후 국가를 위해 이 한 몸 바치겠다는 충성심과 사명감으로 충만했다. 육군에서 교육·훈련으로 이름난 ‘이기자부대’의 첨병 소대장으로 임명됐다. 훈련은 강하게 시키고, 내무반에 들어오면 형제처럼 사랑으로 감싸 안으며 소대원들과 함께 내무반 생활을 했다. 소대원들과 하나가 돼 최선을 다해 노력한 결과 소대전투훈련(ATT)에서 연대 최우수 소대로 평가받았다.

1977년 1월 영하 40도로 떨어졌던 날이었다. 당시 우리 소대는 낮에 대규모 병력 이동이 금지된 전방지역에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면 밤샘 야간행군으로 부대에 복귀해야 해 오후 남은 시간에 전 부대원이 텐트 안에서 가면을 취하고 있었다. 당시 대대장 이상 지휘관들은 훈련 종합강평에 참석하느라 후방지역 전투지휘소에 모여 있었다.

잠시 잠든 사이 전령이 내 텐트 안에서 난로를 만지다가 그만 불을 내고 말았다. 경계를 서던 병사가 “불이야!”라고 고함치는 소리에 잠을 깼는데, 불은 순식간에 인접 소대와 중대 텐트를 태우고 능선 위로 급속히 번져 올라가고 있었다. 능선을 태우는 기세를 보니 여간해선 꺼지지 않을 불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이유야 어쨌든 내 텐트에서 불이 났고 소대장으로서 모든 책임을 져야 했다. 지금까지 노력해 온 모든 게 한순간에 끝이 난다는 사실이 온몸으로 전해져 왔다.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고생한 시간들, 믿음으로 꿈을 키워 왔던 일들이 번개처럼 스쳐가면서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 나는 하나님께 통곡하며 부르짖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제게 투자만 해 오셨잖아요, 그동안 저를 이만큼 키우셨는데 지금 이렇게 끝이 나면 제 인생도 망가지지만 하나님도 손해를 보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정말 저를 쓰시고 싶다면 이 불을 명하여 꺼지게 해주세요. 저는 하나님의 기적의 능력을 믿습니다.”

전 부대원이 불을 끄고 있을 때 혼자 계곡 아래 얼음판에 엎드려 기도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 보니 눈물범벅이 되어 실성한 사람처럼 보였다. 얼어붙은 눈덩이를 떼어 얼굴을 비비며 능선 위로 뛰어올라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 사이에 불은 기적처럼 완전히 진화돼 있었다. 하나님께 온갖 생떼를 부리며 제발 불을 꺼 달라고 매달렸지만 막상 기도가 현실이 된 것을 보니 어리둥절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상황을 들어 보니 정말 기가 막혔다. 불이 무서운 기세로 7∼8부 능선을 타고 올라가는데, 갑자기 역풍이 불어왔다고 했다. 불은 역풍이 불면 자신의 연기로 불을 다 꺼 버리는 속성이 있다. 그 바람 때문에 순식간에 불씨만 남기고 불이 꺼져 버린 것이다. 더 놀라운 점은 지형의 특성상 당시 그곳은 역풍이 발생할 수 없는 곳이었다. 현장에서 소화 작업을 진두지휘하던 부연대장도 화마처럼 치솟던 불길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순식간에 꺼졌다고 했다.

전투지휘소에서는 첨병 소대장인 나를 표창하라는 군단장 지시가 있었다. 헬기를 타고 훈련 광경을 바라본 군단장이 우리 소대가 가장 잘했다고 극찬했다는 것이다. 부대 복귀 후 나는 우리 소대를 ‘기도온 소대’로 명명하고 더 큰 믿음으로 정진했다. 강원도의 험준한 산골을 누비며 힘든 훈련 중에도 내 주머니 속에는 소형 영어사전과 포켓용 영어성경이 항상 들어 있었다. 3사관학교에서 교육받을 때부터 나는 야전 지휘관으로 성공하는 대신 정책부서에서 전문가의 길을 가기로 결심하고 준비했다.

정리=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