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신국원] 언어폭력

입력 2014-09-24 04:49

혀를 여러 가지 날이 달린 스위스 주머니칼에 비유한 이가 있었습니다. 혀는 세 치에 불과하고 부드럽지만 찌르고 베고 후벼 파고 뚫고 자르기도 한다는 것이지요. 요즘 우리 사회에 만연한 막말소동을 보면 그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말은 마음속 생각을 소통하는 체계입니다. 꿀벌 같은 곤충도 언어를 구사한다고 합니다. 물론 인간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인간의 말엔 사물과 사태를 표현하는 명사와 동사 외에도 감정을 실을 수 있는 형용사와 부사도 있습니다. 말로 기능적 소통만 아니라 인격적 관계를 형성합니다. 웃고 울게도 만들고 저주를 퍼붓거나 복음을 전하기도 합니다.

창조주께서 인간에게만 주신 이 경이로운 선물이 심하게 오염되고 있습니다. 최근 국회에서 생긴 일은 우리 사회의 막말 수준을 잘 보여줍니다. 아래위를 안 가리고 퍼부어 대는 언어폭력은 대통령조차 피할 수 없는 형편입니다. 막말이 우리의 일상처럼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린 학생이 훈계하던 노인에게 막말을 해댔다는 이야기는 놀랄 일이 아닙니다.

문제는 결코 막말을 하면 안 되는 이들까지도 말조심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지난주엔 교사에게 욕을 먹고 중학생이 자살했습니다. 한 의사는 환자에게 반말을 일삼으면서 병을 고쳐줄 무례한 실력자와 친절한 돌팔이 중 누구를 택하겠냐고 반문하더랍니다. 증인심문 중에 “늙으면 죽어야 해요” “여자가 맞을 짓을 했으니 맞았지”라고 한 판사도 있었습니다. ‘세상이 엉망인 이유는 모두 저놈들 때문’이라는 질타를 상스러운 욕설로 도배한 ‘닥치고 정치’란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연예인 가운데는 막말을 개인기로 삼아 예명도 그렇게 지은 이도 있습니다. 오디션 심사위원이 독설가를 자처하며 참가자의 기를 짓밟는 것을 본 적도 있습니다. 특히 부모가 아이들을 향해 “쓸모없는 놈, 빌어먹을 놈, 나가 죽어”라고 욕을 퍼붓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막말은 방어가 불가능한 폭력입니다. 청각은 본래 수동적인 감각이라 들리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음속으로 총알처럼 날아들어 피할 도리가 없습니다. 신체적 폭력은 얼마 안 가서 아물지만 영혼에 상처를 준 막말은 평생 응어리로 남습니다. 미디어가 다양하게 변하면서 언어폭력도 점차 다양해졌고 이에 따라 피해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SNS나 인터넷의 막말이 그 주범입니다. 악성루머에 시달리던 유명 연예인이 자살하고 남편과 남동생도 그 뒤를 따른 불행한 일이 있었습니다. 협박이나 모욕죄로 처벌해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상황입니다.

성경은 길들지 않은 혀를 ‘불이요 독이 가득하다’고 표현했습니다. 언어는 마음 즉, 인격 중심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말은 인격을 드러냅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합니다. 조심 없는 말은 칼과 같이 찌르지만 현명한 혀는 치유를 가져옵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필요하면 말도 하라’고 했습니다마는 말없이 전도하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특히 성도들은 평소에도 진심이 담긴 말만 해야 합니다. 사람이 하루에 하는 말을 글로 옳기면 원고지 20장 정도의 분량인데 이를 50년간 책으로 묶으면 1200권은 족히 된다고 합니다. 그 중에 과연 얼마나 많은 부분이 막말이며 하지 않아도 좋은 것일까 생각해봅니다.

신국원 목사(총신대 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