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심박조율기를 꺼야겠다. 네가 좀 도와주렴.”
여든 세 살의 어머니가 예순을 바라보는 딸에게 건넨 말이었다. 딸은 이 말을 몇 달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웨슬리안 대학교 교수로 퇴직한 뒤 여유로운 노년을 보내던 아버지. 그러나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심박조율기로 7년째 생명을 이어오고 있었다. 그 사이 엄마에게 의학은 적이 됐고 죽음은 친구가 됐다.
딸은 엄마의 말을 듣고 사형집행인이 되기로 한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만큼 엄마도 사랑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에 등장하는 딸이다. 죽을 권리를 주장하는 환자와 가족들의 심경을 경험을 통해 이야기한다. 이를 위해 간병을 하는 과정에서 겪은 가족 간의 갈등과 화해를 전면에 내세운다.
이 책이 존엄사를 주장하는 뻔한 이야기와 다른 점은 인간의 신체에 과도하게 개입해 신체적 자율권마저 빼앗는 현대 의학을 비판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여기에 간병비·의료비 등 경제적 이윤을 위해 결탁한 의료계 내부 비리를 고발하고, 개인적 성취에 매몰된 의료진의 과욕이 죽음의 의미를 변질시켰다는 날선 비판도 보탰다. 전미영 옮김.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손에 잡히는 책] 죽을 권리 주장하는 환자·가족들 심경 그려
입력 2014-08-15 0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