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변창배] 작은 것이 아름답다

입력 2014-08-06 04:58

경제학자 에른스트 슈마허는 1973년에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는 책을 펴냈다. 이 한 권의 책으로 슈마허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지성 중의 하나로 꼽히게 되었다. 책은 현대산업문명의 성장위주 경제에 대한 경제학적인 비판이며, 과학기술 위주의 문명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 이 책은 한 해 먼저 출판된 로마클럽의 ‘성장의 한계’와 함께 성장 위주의 사고에 경종을 울렸다. 로마클럽은 1968년에 이탈리아의 실업가 아우렐리오 페체이가 제안해 결성했는데, 52개국의 학자와 기업인, 전직 대통령 등 각계 지도자 100명으로 구성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슈마허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통해 경제와 종교, 자연, 교육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제안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짧은 문장은 촌철살인의 문명 비판 슬로건이 되었다. 기존의 사고를 바꿔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고 새롭게 접근해야 한다는 요구였다. 부제인 ‘인간 중심의 경제를 위하여’가 대안적인 방향이었다. 구체적인 대안 중에는 ‘메타 경제학’과 ‘쉽고 저렴한 중간기술’이 두드러진다.

메타 경제학은 경제만을 위한 경제학을 거부하는 새로운 접근이다. 인간에 대한 연구를 목적으로 하고, 자연에 대한 연구로부터 방법론을 도출하는 새로운 접근법이다. 메타 경제학은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학, 자연과 환경을 염려하는 경제학이라고 할 수 있다. 중간기술은 막대한 규모의 투자를 필요로 하는 과학기술에 대한 대안이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을 만큼 저렴하고, 노동집약적이며, 소규모로 이용할 수 있는 기술을 뜻한다. 그것은 인간의 창조적인 욕구를 수용할 수 있는 민주적인 기술이다.

‘성장의 한계’는 무려 1200만권이나 판매되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로마클럽 스스로 “세계의 정치, 경제, 과학에 대해서 마치 ‘빅뱅’과 같은 충격을 안겨준 책이었다”고 자평한 것을 수긍할 만하다.

‘성장의 한계’는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지만, 지구 자원은 유한하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유한한 자원은 인구와 경제의 성장에 요구하는 자원의 수요를 충족할 수 없고, 자원을 소모한 결과로 환경은 오염돼 인류 문명은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책은 ‘제로 성장’을 실현해야 한다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로마클럽은 1994년에 ‘미래예측 보고서’를 발표하고, 1997년에는 새천년 특별기획으로 ‘노동의 미래’를 발간했다. ‘미래예측 보고서’의 부제는 ‘함께 지구의 미래를 건설하자’이다. 현재와 같은 방식을 고수하면 인류는 머지않아 자멸하고 만다는 경고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을 제안하고 있다. 앞으로 직면할 세 가지 불균형-남과 북 사이의 불균형, 부자와 빈자의 불균형, 인간과 자연의 불균형-을 극복하고 물, 에너지, 토양, 낙후지역의 부흥, 군수산업의 전환 등의 다섯 가지 문제를 다루고 있다. ‘노동의 미래’도 역시 급격하게 해체되는 전통적인 직업과 노동과 고용의 문제점을 분석하며 미래의 도전을 헤쳐 나갈 지혜를 다루었다.

슈마허나 로마클럽의 지혜는 21세기 한국교회를 염려하는 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들의 진지한 경고에 따르면 21세기를 맞는 인류의 화두는 ‘지속가능한 삶’이다. ‘지속가능한 성장’도 사치일 수 있다. 지난 세기에 한국교회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혜가 크지만, 한국교회는 21세기에 ‘성장의 한계’에 직면했다. 도리어 ‘제로 성장’이라도 감사할 처지다.

6만여개를 헤아리는 한국교회 중에서 80% 이상의 교회는 재적 세례교인이 100명 이하일 것이다. 큰 교회와 작은 교회 사이의 간극은 세상의 빈부격차만큼 어려운 문제이다. 필자가 속한 예장 통합 교단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2300여 교회의 목회자들에게 최저생계비를 지원하고 있다. 수혜자가 전체 교회수의 27%가량 된다. 그 재정 규모도 총회 예산의 2.5배에 가깝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작은 교회 목회자들에게 격려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지속가능한 동반 성장’, 21세기를 향한 우리의 소망임에 틀림없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지혜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변창배 목사 (예장 통합 총회기획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