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이슈] 時給 15달러 불씨 살렸다… 꺼져가던 美 최저임금 인상 2라운드

입력 2014-07-29 02:27
미국 상원은 지난 4월 30일(현지시간) 톰 하킨(아이오와·민주) 상원의원과 조지 밀러(캘리포니아·민주) 하원의원이 지난해 발의한 '공정한 최저임금 법안'을 52대 41로 부결시켰다. 공화당에서는 한 명만 찬성표를 던졌다. 이에 따라 버락 오바마 대통령 2기 행정부의 최우선 국정 어젠다인 '중산층 살리기'와 '소득 불평등 해소' 추진에 제동이 걸렸다. 이 법안은 2013년 현재 시간당 7.25달러(약 7450원)인 연방 최저임금을 매년 95센트씩 올려 2016년에 10.10달러(약 1만370원)까지 인상하는 내용이었다. 아울러 임금 액수를 물가와 연동시켜 조정하도록 했다. 하지만 연방 차원에서 사실상 좌절된 '최저임금 인상'이 다른 곳에서 새로운 동력을 얻고 있다. 주와 대도시, 민간 기업들이 독자적인 인상 물꼬를 터뜨리면서 최저임금 전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주·대도시에 민간 기업까지 가세=최저임금 인상 전쟁의 최전선에는 미국의 주요 대도시가 있다. 애틀랜타에서 로스앤젤레스(LA), 시애틀까지 대도시들이 최저임금을 올리고 있다. 연방 최저인금은 최저 기준일 뿐이어서 주나 지방자치단체들이 독자적으로 하한선을 올리면 그 지역에 속한 기업들은 종업원들에게 우선적으로 그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워싱턴주의 시애틀은 지난달 2일 미국을 통틀어 가장 높은 최저임금 수준인 ‘시간당 15달러’ 시대를 열었다. 연방 최저임금(시간당 7.25달러)의 배가 넘는다. 시애틀 시의회가 통과시킨 최저임금법에 따르면 500명 이상 고용 사업장은 2017년까지, 500명 미만 사업장은 2021년까지 최저 시급을 15달러로 올리게 된다.

이뿐 아니다. 새너제이, 샌프란시스코, 산타페, 샌디에이고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15달러는 아니지만 연방 최저임금 하한보다는 훨씬 높다. ‘미국 저임 노동의 수도’라는 오명을 들어온 LA도 최저임금 인상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전미주의회회의(NCSL)의 6월 보고서에 따르면 코네티컷, 델라웨어, 매사추세츠, 하와이, 워싱턴DC, 미시간, 미네소타, 로드아일랜드, 버몬트, 웨스트버지니아 등 12개 주와 특별구가 올 상반기에 최저임금을 올렸다. 2014년 회기에 최저임금 법안을 심의하고 있는 주는 38개에 이른다. 6월 1일 현재 22개 주와 워싱턴DC가 연방 최저임금 하한인 시간당 7.25달러보다 높은 최저임금을 유지하고 있다.

연방정부 차원의 조치도 가세했다. 지난 1월 오바마 대통령은 의회의 승인이 필요 없는 행정명령을 통해 연방정부 계약사업자(contractor)들의 최저임금을 시간당 10.10달러로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민간 기업의 자발적 동참도 잇따르고 있다. 스웨덴의 가구업체인 이케아는 내년 1월 1일부터 미국 직원들의 시간당 평균 최저임금을 올해(9.17달러)보다 17%(1.59달러) 많은 10.76달러로 인상하기로 했다. 이는 미 연방정부가 규정한 최저임금 7.25달러보다 48% 높은 수준이다. 이케아는 주거비, 의료비 등 최저생계비를 자체적으로 계산해 임금인상 폭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롭 올슨 이케아 미국 대표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직원들이 쉽게 직장을 그만두는 것을 막겠다”며 “직원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케아 측은 현재 38개 매장에 근무하는 1만1000여명의 직원이 최저임금 인상 혜택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미국 전체 직원의 절반이다.

앞서 의류업체 갭도 올해 시간당 임금을 9달러로 인상한 뒤 내년에는 10달러로 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창고형 할인점인 코스트코는 종업원들에게 업계 평균보다 훨씬 높은 임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코스트코의 초임은 시간당 11.50달러. 하지만 성과급을 포함해 직원들은 시간당 평균 21달러를 받는다. 거기다 약 90%의 직원이 회사가 부담하는 의료보험 혜택을 누리고 있다. 대형 식품유통체인 홀푸드의 시간당 최저임금은 10달러이지만 직원들의 시간당 평균 임금은 18.89달러에 이른다. 이 회사 직원들의 이직률은 연 10%도 안 된다.

◇포퓰리즘 or 실효성 있는 정책=일반적으로 최저임금 인상은 ‘고용 감소’와 ‘가계소득 상승’이라는 상반된 효과(트레이드 오프·trade off)를 낳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반된 효과가 각각 ‘얼마나’ 될지가 결국 관건이 된다.

보수 성향의 공화당은 최저임금 인상이 인건비 상승을 가져와 기업들이 자동화를 서두르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울러 제품 가격을 상승시켜 소비 감소로 이어지며 결국 고용 규모를 감소시키는 ‘규모 효과(scale effect)’도 발생시킨다고 우려한다. 따라서 이들은 최저임금 인상이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에 가깝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민주당을 비롯한 진보 진영은 미국의 최저임금 수준이 인플레를 감안할 경우 실질적으로 감소해 왔고 생계비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지적한다. 최저임금을 올리더라도 고용이 거의 줄지 않는 반면 가계소득 상승 효과가 커 경제에 선순환을 발생시킨다고 주장한다. 또한 패스트푸드와 도매업계에 대한 조사 결과 최저임금 상승으로 인한 고용 감소 효과가 미미하다는 연구 결과를 내세운다.

경제학계의 결론은 어떨까. 학자들 간에도 일부 의견이 엇갈리지만 큰 틀에서는 민주당과 노동운동 단체 측의 주장에 무게가 실린다. 지난 1월 600여명의 미국 경제학자들이 서명해 오바마 대통령과 미 의회에 보낸 ‘최저임금 인상 촉구’ 성명서가 대표적이다. 이들 중에는 7명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와 8명의 미국경제학회(AEI) 회장 역임자 등이 포함됐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최근처럼 높은 실업률로 임금 인하 압력이 강한 때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저임금 근로자의 가계에 절실한 실질적인 소득 증가를 가져올 것이라고 분석했다. 성명은 수십년간의 경험적 연구 결과 고용시장 사정이 나쁠 때조차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이 거의 줄지 않거나 감소하더라도 미미한 수준임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일부 학자들은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하지 않지만 ‘저임금 근로자가 곧 저소득 가구원’이라는 가정은 틀렸다면서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근로소득장려세제(EITC) 등이 더 바람직하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우재준 박사는 “현 미국 상황에서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고용 감소가 커지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한 것 같다”면서도 “중장기적으로는 최저임금 인상이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도록 추가적인 노력이 경주돼야 경제에 선순환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