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냉혹하고 비정하다. 시작에서 끝까지 딱 3주가 걸린 7·30 서울 동작을 보궐선거 공천 파동과 야권 단일화가 이를 잘 보여줬다.
지난 3일 전략공천을 받았던 새정치민주연합 기동민 후보는 24일 전격 사퇴했다. 정의당 노회찬 후보가 사실상 야권 단일 후보다. 동작을 ‘깜짝 단일화’로 새정치연합은 경기 수원정과 수원병, 정의당은 동작을에서 여야 양자구도를 만들어 막판 역전을 노려볼 수 있다. 야권이 15곳 중에서 7∼8곳까지 승리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동작을 단일화는 야권에 큰 상처를 남겼다.
단일화 과정에서 끝까지 잘 버틴 사람은 기 후보도, 노 후보도 아닌 안철수 김한길 공동대표다. 두 대표는 공천 과정부터 단일화까지 줄곧 냉정했다. ‘당 대 당’ 협상은 없다고 버텼고 공식적인 ‘당 대 당’ 협상은 없었다. 수원정 선거 상황이 좋아졌으니 끈기 있게 버틴 전략적 승리라고 주장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전략이라고 하기엔 내부 상처가 크다. 정치공학적 승리 공식에 맞춰 광주에 있던 박원순 서울시장 측근인 기 후보를 동작을로 전략공천했고, 수도권 참패 위기에 몰리자 노 후보로의 단일화를 유도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기 후보를 전략공천한 뒤 ‘유기(遺棄)’했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김 대표는 25일 경기도 수원 천막상황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기 후보의 사퇴를 “살신성인의 결단”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기 후보와 가까운 한 의원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두 대표가 ‘지도부가 책임질 테니 야권연대는 없다고도, 그렇다고 야권연대가 필요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무책임하다”고 질타했다. 이번 사태로 고(故) 김근태(GT)계를 중심으로 한 486(40대·80년대 학번·60년대생)과 두 대표 사이는 정치적으로 돌아오기 힘든 루비콘강을 건너버렸다는 분석이다.
기 후보는 3주 동안 정치생명이 걸린 두 번의 결정을 했다. 전략공천 수용으로 당내 486을 극심하게 분열시켰고, 후보 사퇴로 486을 안도시켰다. 사실 486들은 기 후보가 동작을에서 당선되지 못할까봐 내심 염려했다. 어찌됐든 학생운동 후배이자 23년 지기인 허동준 전 동작을 지역위원장을 밀어내고 공천을 받았는데 선거에서 패한다면 아무것도 남는 게 없기 때문이다.
기 후보는 사퇴를 통해 정치적 퇴로를 찾았다. 기 후보는 사퇴 후 캠프 관계자 등과 만난 자리에서 “GT라면 이러한 상황에서 사퇴했을 것”이라고 양해를 구했다고 한다. 하지만 486은 이미 둘로 쪼개졌고, ‘공천 놓고 자기들끼리 싸우는 정치 집단’이라는 인상을 남겼다.
노회찬 후보는 치킨게임을 주도했다. 그가 던진 ‘단일화 협상이 결렬되면 사퇴’라는 말은 뒤집어 말하면 ‘아름다운 단일화는 없다’는 뜻이었다. 정치 후배를 겨냥한 노련한 승부수였지만 동시에 비정한 한 수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는 승부수가 적중했지만 진보정치의 ‘아이콘’이라 불리던 노 후보의 행보로는 부적절하다는 비판이다. 정의당 심상정 원내대표는 라디오에 출연해 “사실상의 당 대 당 야권연대가 이루어진 것으로 본다”고 말해 여권에 공격거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야권은 동작을 야권연대를 계기로 선거 승리를 다짐하고 있다. 그러나 공천과 야권연대 과정에서 보여준 무책임과 분열, 낡은 정치 행태는 유권자들에게 또 한번 큰 실망을 남겼다. 야권 단일화의 레퍼토리도 뻔하다. 야권이 최근 두 번의 총선과 두 번의 대선에서 연거푸 패한 이유가 멀리에 있지 않다.
엄기영 정치부 기자 eom@kmib.co.kr
[현장기자-엄기영] 공천파동·단일화서 드러난 야권의 민낯
입력 2014-07-26 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