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가슴에 달렸던 노란 리본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세월호 참사’는 지금 망각과 싸우고 있다. 어느덧 3개월이 지났다. 도저히 잊을 수 없을 것 같았고, 잊지 말자고 스스로 수십 번 다짐했지만 기억은 흐릿해지고 있다.
물론 기억을 위한 노력들이 한 켠에 존재한다. 기록하는 사람들, 전시회나 연주회를 여는 사람들이 있고 집회나 토론회가 여기저기서 열린다. 어느 방송은 아직도 매일 저녁 뉴스를 세월호 소식으로 시작하고 있다.
세월호를 잊지 않기, 세월호를 기억하기.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참사 이후 스스로에게 자발적으로 부과한 과제이기도 하다. 그것이 이 엄청난 비극을 초래한 어른들로서 최소한의 의무라고 여겼고, 이 비극적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거기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시간에 밀려 일에 파묻혀 살던 어느 날 세월호를 잊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 예를 들면 TV 뉴스에서 유가족들의 얼굴을 보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마음의 가책을 느낀다. 어쩌면 앞으로도 한동안 우리 모두는 망각과 가책 사이를 오가게 될지 모른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일의 한가운데 유가족들이 있다. 자식을 잃고 세상에서 가장 슬픈 단어인 ‘유가족’이라는 이름표를 단 사람들이다. 이들은 죽은 자식들을 밤마다 떠올리며 아침이 되면 생업을 내려놓고 진상 규명과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을 보면서 ‘민가협(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어머니들을 떠올리게 된다. 군사독재정권 아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구속되고 희생당했는데, 그 가족들이 하나둘 모이면서 만들어진 단체가 민가협이다. 1980년대, 90년대 민주화 운동 현장의 가장 앞자리는 언제나 민가협 어머니들 차지였다. 자식을 잃은 한과 분노, 또 다른 자식들에 대한 연민 등을 연료로 한 어머니들의 싸움은 이 땅에 민주주의를 가져온 가장 순수하고 용감한 힘이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르헨티나의 ‘5월광장어머니회’ 역시 유가족 모임이다. 1977년 5월, 아르헨티나 독립의 상징인 5월광장에 “내 아이는 어디에 있는가?”를 외치며 실종자 14명의 어머니들이 모였다. 서슬이 시퍼렇던 군부독재 시절이니 자녀를 잃은 어머니들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용기였다. 정부에 의해 실종된 자녀들을 찾아 달라는 이 어머니들의 서글픈 외침이 침묵하던 국민들을 움직였다. 5월광장은 민주화 운동의 중심지로 변했고, 결국 군사정권은 무너졌다.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말이 있다. 어쩌면 신은 우리 모두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하는 것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 유가족을 만들었는지 모른다. 유가족들은 잊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이 다 잊어도 그들은 자식을 잊지 않는다. 잊을 수 없다.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해서는 유가족들을 지켜야 한다. 그들이 지금 무너져 내린다면 우리 사회는 세월호 사고로부터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 한 채 그 일을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들은 지금 지쳐 있고 날카롭다. 단식으로, 농성으로 행동은 더욱 과격해진다. 그들의 목소리를 불편해하거나 흠을 잡아보려는 세력들도 있다. 유가족들끼리 내부 갈등으로 분열하거나 보상금과 관련한 추문이 불거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순수하고 신뢰할 만한 단체나 존경받는 인사들이 나서고 시민들이 가세해 유가족들을 실질적으로 도와야 한다. 유가족을 지키는 것은 기억을 지키는 일이다. 유가족들은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할 기억을 존재로 간수하고 있다.
김남중 문화부 차장 njkim@kmib.co.kr
[뉴스룸에서-김남중] 유가족은 잊지 않는다
입력 2014-07-18 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