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규 교수의 바이블 생명학] 흙의 노래

입력 2014-07-12 02:11

당시 갓 스무 살이 된 김덕규는 P의과대학 1학년 학생이었다. 실습복을 걸치고 해부실습실에 처음 들어선 그에게 지독한 포르말린 냄새가 확 달려들었다. 넓은 실습실 안에는 여러 개의 해부대(解剖臺)가 놓여 있었는데 해부대마다 사체가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지정된 해부대로 다가갔다. 40대쯤 보이는 남자의 야윈 나신이 눈에 파고들어왔다. 난생처음 대하는 사체는 형광등 불빛 탓인지 마치 백토(白土)로 빚어 만든 정교한 인체 조각상(彫刻像)처럼 보였다.

날카로운 수술용 메스가 움직일 때마다 피부는 갈라졌다. 이미 혈액이 혈관 내에서 응고한 탓에 출혈은 거의 없었다. 해부학 실습 지침서에 따라 신체의 각 부위들이 하나씩 잘려 나갔다. 그동안 해부학 교과서를 통해 암기하였던 인체의 모든 구조물이 이제는 사실적으로 이해되어 머릿속에서 입체적으로 각인되었을 때 해부학 실습은 끝이 났다. 해부대 위에는 두개골부터 족골까지 샅샅이 분해된 뼈들만 남았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 3:19)

이 말씀만큼 인간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어 주는 것이 또 있을까. 의학 교과서 어디를 찾아보아도 인간이 흙이라는 설명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의 육체가 흙이라는 것을 아무리 부인하려 해도 부인할 수 없다. 사체는 하나씩 해체되어 뼈만 남게 되었고 그 뼈도 결국은 티끌이 되는 것이다. 흙으로 돌아가 흙이 되는 것이다.

그 20대 의학도가 의사가 되어 이제 육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다소 뜻밖인 것은 남보다 한참 늦은 나이에 시인이 되어 시인의 길도 함께 걷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의술만큼은 원숙하지 못한 그의 시 ‘흙의 노래’ 중에서 마지막 부분을 소개해 본다.

흙에서 나를 빚으신 이여

티끌에서 나를 조성하신 이여

당신의 생명 한 가닥

나에게 심어 주소서

나 흙으로 돌아 갈 때까지

당신의 노래만 부르겠나이다

시에서 그는 자신의 본질이 흙임을 철저하게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믿는 하나님은 그 흙으로 자신을 창조하신 창조주임을 고백하고 있다.

그는 그 하나님에게 간구한다. ‘당신의 생명’을 달라고 청원하고 있는 것이다. 시구(詩句) ‘당신의 생명’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리스도인은 거듭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새 생명으로 받았기에 이외의 또 다른 생명을 달라고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는 자신이 흙에 불과한 존재이기에 그로부터 유래된 어떤 것으로도 영원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유래된 어떤 것을 가지기를 소원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흙으로 빚어진 토기와도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투박한 토기 위에 덧칠된 유약으로 인하여 화려하게 빛나고 있기에 자신의 본질이 흙임을 잊고 있는 그 토기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안료로 칠하고 유약을 발라도 토기는 토기이다. 중요한 것은 토기가 아니라 토기 안에 담겨 있는 내용물이다. 하늘의 것으로 가득 찬 토기는 분명 아름답게 귀하게 사용될 것이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은 햇빛, 비, 바람이다./ 생명이다./ 성령이다.

하늘을 사모하는 사람은 햇빛과 비와 바람을 닮은 사람이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주는 생명력으로 충일한 사람이다. 성령의 보호와 인도와 능력을 갈망하는 사람이다. 자신이 부르고 싶은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듣고 싶어 하시는 노래를 부르려고 애쓰는 사람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동아대 의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