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한 ‘11m 룰렛’… 바조, 허공에 뻥 우승컵 날아갔다

입력 2014-06-30 02:29
29일(한국시간) 브라질-칠레 간의 첫 브라질 월드컵 16강전에서 양국 대표팀 키커 5명이 승부차기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칠레 키커 3명, 브라질 키커 2명이나 실축한 것이다.

이처럼 ‘11m 룰렛’으로 불리는 승부차기는 전 세계가 지켜보는 월드컵이라는 최고의 무대에서 키커에겐 극도의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한다. 세계적인 스타들도 실축하는 경우가 많다.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이자 프랑스 아트사커의 지휘자로 이름을 떨쳤던 미셸 플라티니는 1986 멕시코월드컵 브라질과의 8강전 승부차기에서 볼을 허공으로 날려버렸다. 다행히 프랑스가 승부차기에서 4대 3으로 이겨 플라티니는 역적 신세를 면했고, 경기 당일 생일잔치도 기쁘게 맞이할 수 있었다.

아르헨티나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도 승부차기 실축 경험이 있다. 그는 1990 이탈리아월드컵 8강전 유고슬라비아전 승부차기에 나섰다. 결과는 골키퍼가 두 손으로 잡아낼 수 있을 정도로 중앙으로 약하게 날아갔다.

월드컵 승부차기 실축 역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이탈리아의 로베르토 바조다. 1993년 국제축구연맹(FIFA)이 선정한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던 바조는 1994 미국월드컵 결승전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키커로 나섰다. 그러나 바조가 찬 공은 크로스바 위로 훌쩍 날아갔고, 이탈리아는 2대 3으로 우승 트로피를 브라질에 헌납하고 말았다. 이 실축 하나로 바조는 이탈리아인들에게 역적이 됐고,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비운의 스타로 기억되고 있다.

조별리그를 마치고 녹아웃 방식으로 열리는 2라운드에서 적용되는 승부차기는 1982 스페인월드컵 당시 처음 도입됐다. 브라질월드컵 브라질-칠레전까지 모두 23차례의 승부차기가 치러졌다.

가장 강한 모습을 보인 팀은 독일이다. 독일은 1982 스페인월드컵, 1986 멕시코월드컵, 1990 이탈리아 월드컵, 2006 독일월드컵에서 네차례의 승부차기를 모두 승리해 승률 100%를 자랑한다. 독일 다음으로 승률이 높은 팀은 승부차기에서 3승1패를 기록한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이다.

한국은 월드컵 역사에서 딱 한 번 승부차기를 경험했다. 바로 2002 한일월드컵 스페인과의 8강전이다. 한국은 승부차기에서 키커로 나선 선수 모두가 골을 넣어 4강 신화를 일군 바 있다.

승부차기에선 먼저 공을 차는 팀이 유리하다. 지금까지 23차례 승부차기에서 먼저 슛을 한 팀이 14승9패로 많은 승수를 쌓았다. 이날 열린 승부차기에서도 먼저 슛을 한 브라질이 칠레를 꺾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