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를 가짜로 만드는 게 더 나빠… 아니면 말고 식 위작시비 지양돼야”

입력 2014-06-24 02:30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 소장품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위 그림)와 스페인 프라도미술관 소장품인 작가 미상의 ‘모나리자’(아래). 포퓰러나무판에 유채로 그린 루브르박물관 작품과 달리 호두나무판에 그림을 그리고 인물의 배경도 다른 게 위작의 증거라는 주장이다. 동문선 제공
최병식 교수
“미술품 감정은 난해하면서도 위험한 영역이에요. 그래서 툭하면 위작시비가 벌어지지요. 한국은 감정의 근거가 되는 자료도 부족하고 학문적으로도 체계가 전혀 갖춰지지 않은 실정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칫 감정(鑑定) 잘못하면 감정(感情) 상하기 십상이지요.”

한국화랑협회 산하 감정협회 감정위원으로 활동하고 경희대에서 ‘비평과 미술관 경영’을 가르치는 최병식(60) 교수가 감정의 모든 것을 담은 ‘미술품감정학’(동문선)을 최근 펴냈다. 국내외 감정시스템을 학문적으로 조목조목 분석하고, 세계적 위작 사례를 도판과 함께 흥미롭게 다루었다. 국내 미술품 감정이 도입된 지 30년이 됐지만 관련 전문서적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23일 서울 태평로 한 음식점에서 만난 최 교수는 책이 출간되기까지의 어려움을 털어놨다. “가짜로 판명된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경우 도판이 공개되는 걸 꺼려하기 때문에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는 감정 결과 진품으로 결론 났지만 천 화백 측이 위작이라고 주장하며 절대 도판을 실으면 안 된다고 해서 부득이 도판을 사용하지 못했어요.”

저자는 외국의 감정 사례를 연구하기 위해 프랑스 영국 독일 일본 중국 미국 등을 직접 찾아갔다. 그곳에서 조사한 진위 논란 작품의 숨은 사연을 들려준다. 1990년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592억원에 낙찰된 반 고흐의 ‘가셰 박사의 초상’과 같은 제목의 프랑스 파리 오르세미술관 소장품은 거의 비슷하다. 두 작품 사이에 벌어진 진위 논란은 아직까지 진행 중이다.

또 파리 루브르박물관에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스위스 모나리자재단 소장품인 작가 미상의 ‘아일워스 모나리자’,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미술관 소장품인 작가 미상의 ‘모나리자’를 비교하며 이들 작품에 얽힌 뒷이야기를 전한다.

최 교수는 “사람들이 진짜냐 가짜냐에 관심이 많지만 어떤 작품이든 명쾌하게 결론 내리기는 어렵다”며 “진위보다 중요한 것은 작품의 이력을 정확하게 밝혀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작가와 작품에 대한 각종 자료를 확보하는 게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안목감정, 과학기기로 재료의 연대 등을 밝혀내는 과학감정을 제도적으로 정착시키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 미술품 경매에서 사상 최고가(45억2000만원)에 낙찰된 박수근 화백의 ‘빨래터’ 진위 논란이 불거졌을 때 감정위원으로 참여한 그는 “가짜를 만들어내는 것도 나쁘지만 진짜를 가짜로 만드는 것은 더 나쁘다”며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성 위작시비는 지양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