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동부전선 총기 난사로 숨진 하사 한 명이 ○○○라네요. 그 착하고 성실한 친구가….”
최전방 일반소초(GOP) 총기난사 사건의 사망자 김모(23) 하사는 불과 나흘 전인 17일까지 3박4일간 휴가를 나왔다. 여느 군인들처럼 소문난 ‘맛집’에도 가고 여자친구와 데이트도 즐겼다. 휴가 마지막 밤에는 중학교 때부터 친형처럼 따르던 전남 곡성의 지역아동센터 선생님과 함께 새벽 4시까지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 나흘이 마지막 휴가가 되리라곤 오랜 시간 사랑을 키워온 여자친구도, 친형처럼 따르던 그의 멘토도 알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사고 소식에 지인들은 모두 말을 잊었다.
◇“군대 체질이라더니…”=김 하사는 전남과학대 호텔조리 김치발효과를 졸업하고 2012년 여름 부사관으로 입대했다. 이후 휴가를 얻어 고향에 갈 때마다 “군대가 체질에 맞아 참 좋다. 열심히 해보고 싶다”며 환하게 웃곤 했다. 입대 전에는 곡성의 지역아동센터에서 일하기도 했다. 기초생활수급 가정에서 자랐지만 더 어려운 이들을 도우며 사회복지를 공부했고, 동네 후배들에겐 든든한 멘토였다. 스스로 ‘언제나 철저히 준비하며 항상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는 에너자이저’라고 칭했던 그였지만 어두운 곳을 돌보겠다던 꿈은 이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함께 농촌 봉사활동을 하며 인연을 쌓은 지인 김모씨는 “김 하사는 사람들끼리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생각하며 봉사하는 삶을 살았다”며 “나이가 어린 김 하사에게 내가 배우는 게 더 많았다”고 했다. 박경희 곡성지역아동센터장도 “사병들이 김 하사를 잘 따라 조언도 구하고 고민도 털어놓는다고 했다”며 “그렇게 군대를 좋아하던 애가 이렇게 떠날 줄은 몰랐다”며 울먹였다.
◇든든한 가장, 고민하는 봉사자=장남인 그는 집안의 기둥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겨울방학부터 축산업, 유통업, 버스기사 등 여러 직업을 거쳤던 아버지에게 일을 배웠다. 4년 전 어머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 건강까지 악화되면서 김 하사는 주말도 밤낮도 없이 일과 학업을 병행했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돌봐야 할 동생이 셋이나 있었다. 그래도 틈틈이 자원봉사나 농활 등의 체험활동 등을 통해 남을 돕는 데 앞장섰다.
중학교 때부터 지역아동센터인 ‘웃음만땅’에서 공부하던 김 하사는 성인이 된 뒤에는 아동센터 아이들을 위해 시간을 나눴다. 그러다 ‘사회복지’에 눈을 떴다. 김 하사와 10년 가까이 인연을 이어온 박 센터장은 “김 하사는 아이들을 돌보는 삶에 의미를 두고 사회복지를 깊이 공부하고 싶어 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아동센터에 봉사자로 지원할 때 제출한 자기소개서에서 “‘우리보다 생활력이 약한 사람이 있으니 항상 감사하며 살고 어떤 일이든 우직하게 하라’던 돌아가신 어머니의 말을 늘 가슴에 품고 있다. 생색내는 사회봉사가 아닌 삶에서 묻어나는 사회복지를 펼치고 싶다”고 밝혔다.
◇곡성 아이들의 맏이=형편이 어려웠던 어린 시절 교회 집사님들과 함께 낚시하러 다녔던 추억을 소중하게 간직해온 김 하사는 동네 아이들의 ‘맏형’을 자처했다. 지역아동센터에서 봉사하며 “요즘은 농촌에 살아도 이런 경험을 못하는 아이들이 많으니 직접 형과 오빠가 되어 지역의 아이들과 산으로 들로 강으로 다니며 좋은 경험을 하고 싶다”고 고백하던 듬직한 선배였다.
직접 야간복지교사, 아동복지교사 봉사를 거쳐 도보순례, 캠프 등을 직접 기획하고 진행하며 아이들과 부대꼈다. 그는 “아이들은 어른에게 여쭙고 어른은 아이와 의논하는 활동 프로그램을 만들다 보니 아이들은 어른에게 믿음을 주고 어른은 아이들에게 신뢰를 받는 소통의 장이 펼쳐졌다”며 “이러한 모습에서 ‘걸언’(乞言·가르침을 달라고 청함)의 중요함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어린 동생들의 사소한 고민도 지나치지 않고 경청하던 그를 후배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믿고 따랐다.
그는 입대 전부터 “복무하는 동안 꾸준히 적금을 넣어 돈을 모은 뒤 군복무를 마치고 사회에 나와서 프랜차이즈 사업을 할 것”이라고 다짐하며 꿈을 키웠다. “실패도 맛보고 산전수전 다 겪은 뒤 사회에 환원하고 지역사회에 덕이 되는 프랜차이즈 기업을 일구고 싶다”고 했었는데 이제 그럴 수 없게 됐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
[GOP 총기난사-단독] 온 동네 아이들 맏형 노릇하며 ‘참 복지’ 꿈꿨는데…
입력 2014-06-23 0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