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63) 전 국가정보원장이 대선 개입 혐의의 핵심 증거인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부서장 회의 녹취록) 문건에 대해 "직원이 써준 대로 읽었다"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원 전 원장은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부장판사 이범균) 심리로 16일 열린 공판에서 "직원이 회의 전 모두발언을 작성해 책상에 올려놓는다"며 "그냥 보고 읽을 때도 있어서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부서장 회의는 국정원 간부 30∼40명이 참석하는 내부 회의다. '원장님 지시 말씀'은 이 회의 등에서 나온 원 전 원장 발언을 정리한 것으로 국정원 모든 직원이 열람할 수 있다. 검찰은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이 '원장님 말씀'을 반영해 인터넷 대선 개입 게시글·댓글을 작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원 전 원장은 "회의 논지에 따라 내가 일부 내용을 추가하는 경우도 있다"면서도 "대체로 직원들이 먼저 정리해주지 않으면 어떤 부서에서 무엇을 하는지 원장이 알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또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에 대해 "직원들이 원장님 말씀을 열람할 수 있다는 것도 퇴직 직전 언론 보도를 보고서 알았다"고 말했다.
'원장님 말씀'에는 "김대중정부의 햇볕정책이 북한 핵실험으로 이어졌다는 내용의 교육 자료를 학교나 군대에 배포할 수 있도록 하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국정원이 제대로 활동하면 이명박정부의 지지율이 오를 것"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날 원 전 원장은 지난해 8월 첫 공판 후 10개월 만에 피고인 신문을 받았다. 재판부는 30일 원 전 원장 결심 공판을 진행한 후 7월 말 선고할 예정이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원세훈 “원장님 말씀, 직원들이 써준 대로 읽었을 뿐”
입력 2014-06-17 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