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박정태] 지도자 인식부터 바뀌어야

입력 2014-06-17 02:40

딱 두 달.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는 12명. 꽃다운 젊은이들의 억울한 죽음에 국민적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유가족들의 애절한 울부짖음은 귓가에 맴돈다. 지금도 진도 팽목항에는 소리 없는 눈물을 흘리며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들이 남아 있다. 이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잊혀져가는 게 두렵다고 하지만 총체적 부실과 사회 부조리, 그리고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이 빚어낸 대참사를 누가 잊을 수 있겠는가.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가 ‘부실’의 문제라고 한다면 세월호 참사는 ‘불신’의 문제로 귀결된다. 사태의 본질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쉽게 잊혀질 일도 아니고 잊혀져서도 안 된다. 영원히 기억하고 참회하고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려면 철저한 진상 규명이 필수적이다. 이를 토대로 관련자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고 국가와 사회 시스템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말하는 국가 개조와 다를 바 없다. 이는 유족들의 바람일 뿐 아니라 희생자들에 대한 도리다.

민심과 동떨어진 총리카드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상처 치유가 쉽지는 않겠다. 국민이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도 더디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탐욕의 시스템과 허수아비 정부의 합작품이었기에 충격이 너무 컸다. 그럼에도 아픔을 딛고 다시 일어서야 한다. 제 위치에서 제 역할을 제대로 해나가야만 사회가 움직이고 경제가 돌고 국가가 유지된다. 일각에선 일상 복귀란 말에 우려를 표하기도 하지만 ‘애도’와 ‘일상’을 이분법적 잣대로 나눌 일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유가족들이 성숙하다. 유가족들은 최근 월드컵 거리응원 논란이 벌어지자 국민의 활기찬 응원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전했다. 단, 월드컵 이후 우리를 잊지 말아 달라는 게 그들의 부탁이었다. 콧잔등이 시큰하다.

국민과 유가족들은 이처럼 서로를 다독이고 배려하고 기억하는데 유독 청와대는 2개월 만에 아픈 기억을 잊어버린 듯하다. 민심과 유리된 국무총리 지명을 이해할 수 없어서다. ‘최경환을 위한 2기 내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 경제부총리 기용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긴 하지만 그래도 납득 가능하다. 경제 살리기가 시급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경제는 세월호 참사 여파로 내수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경제주체들의 심리는 위축돼 있다. 우선 특단의 소비 진작책과 기업 투자 유인책 등이 필요한데 추진력 있는 경제사령탑에 대한 기대가 작지 않다. 경제민주화는 뒷전으로 내몬 채 성장 지상주의로 흐르는 부분은 경계해야겠지만 일단 시장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문창극 총리 후보자 문제는 다르다. 세월호의 교훈으로 민심은 화합, 소통, 상생의 정치를 요구해왔다. 대통령의 선택은 정반대다. 논란이 되고 있는 발언 부분은 사전 검증이 안됐다손 치더라도 기본적으로 합리적 수준을 넘어 이념적 편향성이 강한 데다 복지 정책에도 거부감을 표시하고 있는 ‘문창극 카드’를 빼든 것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6·4지방선거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인 결과가 과연 이것인가. 정책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야권이 사실상 패배하고 ‘박근혜 살리기’ 마케팅에 나선 여권이 선방한 데 대한 자신감의 발로일지도 모르겠다.

세월호 교훈을 벌써 잊었나

문 후보자 인선은 오히려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초래하고 있다. 문 후보자가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까지 자청하고 해명했지만 진정성은 보이지 않는다. 추락할 대로 추락한 정부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로 가야 하는데 국정운영 기조가 세월호 이전과 별반 달라진 게 없으니 안타깝다. 국가를 개조하려면 대통령을 비롯한 지도자들의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대한민국은 세워지지 않는다.

박정태 산업경제센터장 jt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