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규 교수의 바이블 생명학] 가슴을 여는 사람들

입력 2014-06-14 02:30 수정 2014-06-14 14:55

필리핀 사람 데이비드(가명)는 체구는 작고 여윈 편이지만 맑은 눈과 밝은 웃음을 가지고 있어 쳐다보는 이들을 기분 좋게 해준다. 20대 중반임에도 결혼해 아이까지 있다. 그는 피로감을 자주 느껴왔는데 몇 개월 전부터 피로감이 심해졌고 급기야는 호흡곤란 증세까지 나타났다. 현지에서 진찰받은 결과 그의 병은 심장판막 가운데 하나인 승모판이 정상적으로 닫히지 않는 승모판폐쇄부전증으로 진단됐다. 그가 이 병을 치료받기 위해 한국에 오게 된 것이다.

데이비드가 수술대에 누웠다. 마취과 의사가 “one, two, three” 세어보라고 했지만 그는 “three”도 채 세지 못하고 깊은 잠에 빠졌다. 흉부외과 의사는 그의 가슴을 열기 시작했다. 아담에게 배필을 만들어주기 위해 아담을 재워 가슴을 연, 그 하나님으로부터 마취와 수술의 비법을 전수받은 자가 바로 그들이라는 듯 의사들은 익숙한 솜씨로 자신들에게 주어진 임무를 열심히 수행했다.

데이비드가 이렇게 수술을 받기까지 여러 사람의 도움이 있었다. 먼저 자신이 섬기는 필리핀 교회 목사님(한국인 선교사)의 도움이 가장 컸다. 교회에서 촉망받는 청년이 일상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병에 걸린 것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의 안쓰러운 모습이 선교사님의 마음을 열게 했던 것이다.

마음은 뜨거우나 현실은 여지없이 차갑기 마련이다. 하루라도 빨리 수술 받고 싶고 또 수술 받게 해주고 싶지만 엄청난 비용이 넘지 못할 산처럼 앞을 가로막는다. 그들은 기도의 무릎을 꿇었다. 데이비드의 수술비용 일체를 담당하겠다는 후원자가 나타났다. 선교사님의 간절한 호소를 들은 사람들 중 한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열었던 것이다.

더 나은 치료를 받기 위해 한국에서 수술 받기로 결정했다. 후원자가 상당한 후원금을 작정했지만 여전히 수술비용이 문제가 됐다. 작정된 후원금으로 수술을 해줄 병원을 찾아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선교사님과 필자가 연결되었던 것이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필자가 속한 병원의 흉부외과 의사는 선선히 부탁을 들어주었다. 집도를 해주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무보수로. 이 좋은 소식을 바로 의료사회복지사에게 전했다. 그녀는 백방으로 노력해 작정된 후원금 등으로 수술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았고 마침내 원장의 허락을 받아냈던 것이다.

마침내 수술은 끝났다. 데이비드는 회복실로 옮겨졌고 마취에서 깨어났다. 그가 속한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기도한 대로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그는 건강한 심장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전처럼 동료들과 함께 찬양을 인도하며 새 가족들을 양육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이게 될 것이다.

데이비드를 위한 이 모든 도움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한다. 하나님 은혜가 없었다면 어찌 이 모든 일이 이렇게 순적하게 진행되었을까. 하나님께서 이번 ‘데이비드 살리기’에 담당했던 그 모든 이들의 가슴을 여셨기 때문에 이 치료 사역이 가능케 되었던 것이다.

데이비드의 앞가슴에는 15㎝ 남짓한 수술창상(手術創傷)이 있다. 그것은 그곳에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흔적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자국이다. 한번 가슴을 열어본 사람은 다음에는 더 쉽게 가슴을 열 수 있다. 이제 건강을 회복한 데이비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가슴을 열 것이다. 그가 가슴을 열 때마다 많은 필리핀 사람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직접 목도하게 될 것이다.

<동아대 의대 교수>

◇약력: 동아대학교병원 내분비내과 과장, 고신 전문인선교훈련원 이사장, 부산 온천교회 장로. 2010년 천안함 폭침 시 ‘772함 수병은 귀환하라’ 시를 발표했고 2013년 ‘문학시대’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