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육아+일 ‘슈퍼맘’ 여성 영웅 모습일까

입력 2014-06-06 03:05 수정 2014-06-06 11:06
영웅은 지하 세계의 괴물을 물리치기 위해 긴 여정에 나선다. 험난한 과정을 거쳐 목표한 바를 이룬 뒤 당당히 귀환한다. 동·서양 신화에 나오는 일반적인 영웅담이다. 그들은 모두 남자다.

융 심리학자이자 심리상담가인 저자는 1981년 9월 ‘왜 여성 영웅은 찾아보기 힘든가?’ ‘여성의 영웅적 여정은 어떤 모습인가?’라는 질문을 들고 20세기 최고의 신화학자로 불리는 조지프 캠벨을 찾았다. 캠벨은 ‘영웅의 원형’을 찾아 동서양의 신화를 연구했다. 그런데 그가 쫓은 영웅 중 여성은 없었다.

머독의 질문에 캠벨은 “여성은 여정을 떠날 필요가 없다”는 예상치 못한 답을 내놨다. 여성은 그 자체로 완성된 존재라는 게 이유였다.

저자는 이 때부터 인류의 집단 무의식이 발현된 신화와 민담, 동화, 상담한 여성들의 꿈을 분석해 ‘여성 영웅의 원형’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웅의 길에 나선 현대의 여성들을 위한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기 위한 연구에 나섰다.

여기 여성 영웅들이 있다. 한 손엔 이유식, 한 손엔 서류가방을 쥔 채 저글링을 하는 슈퍼맘의 모습으로 나타난 그녀들은 그러나 어느 순간 갑자기 삶의 의미를 잃고 우울과 상실감에 빠진다.

미국 샌터바바라 출신의 심리학자 마티 글렌은 아이를 키우며 경력을 쌓느라 기력을 소진했다. 그녀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불꽃이 꺼지면서 벌어진 일들을 이렇게 묘사했다.

“자양분이 공급되지 않을 때 정신의 불꽃에 더는 연료가 공급되지 않을 때 아주 오랜 시간 간직한 꿈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사라질 때 여성은 자신의 ‘내면의 불’을 잃게 된다. (중략) 어떤 것도 이제는 의미가 없다. 자신이 진짜 누구인지 더는 알지 못한다.”

저자는 글렌처럼 직장에서 성공한 여성들 대부분이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남성 중심적 문화에서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뿐이었기 때문이다. 남성 영웅의 여정을 따르며 성공하거나 혹은 남성에게 지배당하는 것.

가장 먼저 여성들이 한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기 위해 어머니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삶을 평가 절하했고 자신과 분리했다. 어머니에게 벗어난 여성의 구원자는 아버지였다. 자신의 모습을 아버지에게서 찾으려고 노력했다.

이 같은 과정이 반복될수록 여성은 공허함과 쓰라린 고통만 느꼈다.

저자는 여성 영웅이 고통에서 해방하려면 내면으로 여행을 떠나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리고 여성 영웅의 여정에 가장 큰 도전 과제를 제시했다. 바로 자신이 여성성과 분리돼 있다는 데서 깊은 슬픔을 느끼고 어떤 식이든 적당한 방식으로 이 상실에 대해 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숨을 들이쉬면서 뺨 위로 흐르는 눈물을 느끼고 숨을 내쉬면서 그 따뜻한 느낌에 감사함을 느낀다. 숨을 들이쉬고 웃어보자. 당신 자신에게 너그러워지라. 작은 것부터 시작하라.”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