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동료들 가운데 소년 두 명이 탈주했기 때문에 새벽녘이 되어서도 우리는 출발하지 않았다.”
세계문학의 거장 오에 겐자부로가 20대에 쓴 첫 장편 ‘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의 첫 문장이다. 작가는 소년들이 동료를 위해 스스로 출발을 결정하지 않았다고 묘사한 이 문장을 통해 그들 간의 끈끈한 유대감을 전한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집단적 광기와 살인의 시대였던 태평양 전쟁 말기. 감화원에 있던 소년들은 가족에게 외면을 당했고 산 속 벽촌에 맡겨졌다. 마을에 전염병이 돌면서 사람들은 떠났고 마을은 폐쇄됐다. 남겨진 사람은 15명의 감화원 소년과 피난민 여자아이, 조선인 부락의 소년 그리고 살인이 싫어 탈영한 군인. 이들은 음식을 나누고 아픈 사람을 간호하며 인간애를 느낀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면서 이들의 행복도 끝이 난다. 극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어른들의 잔혹함을 사회적 약자인 어린 주인공의 시선을 통해 보여주는 소설. 작가는 세상의 벽에 막혀 패배하더라도 자유를 향해 탈출하려는 인간의 강한 의지를 소설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1994년 겐자부로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뒤 국내 나온 책을 새롭게 재출간했다. 유숙자 옮김.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손에 잡히는 책] 젊은 오에 겐자부로가 고발한 집단 광기
입력 2014-06-06 03:05 수정 2014-06-06 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