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빠지고 중국 견제에 초점…‘아메리카 퍼스트’ 내세운 트럼프 국가안보전략

입력 2025-12-07 09:45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행사에서 2025년 케네디센터 명예의 전당 수상자 메달 수여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새 국가안보전략(NSS)을 발표하며 외교 정책의 일대 전환을 공식화했다. NSS는 미국의 주요 안보 목표와 우선순위를 설정하는 로드맵이다. 지난 5일(현지시간) 공개한 NSS는 북한 비핵화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아시아 전략은 중국 견제에 초점을 맞추며 한국 등 동맹의 비용 분담을 요청하는 한편, 유럽에서는 동맹국들이 스스로 자국 방어에 주요 책임을 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29페이지 분량의 NSS는 트럼프의 외교 정책에 대해 전통적 정치 이념에 기반하지 않는다고 밝히며 “‘아메리카 퍼스트’라는 두 단어를 기준으로 움직인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핵심 국가안보 이익이 우리의 초점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NSS는 미국의 전략 개념과 함께 서반구(Western Hemisphere )와 아시아, 유럽, 중동 등 지역별 전략을 소개했는데 북한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트럼프 1기 당시 17차례 언급된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인 변화다. 북한 비핵화 문제가 미국의 아시아 정책에서 점차 후순위로 밀려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대목이다.

NSS는 미국의 아시아 전략의 핵심이 중국 견제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NSS는 “인도 태평양 지역이 향후 한 세기 동안 핵심 경제·지정학적 격전지가 될 것”이라며 “우리가 국내에서 번영하려면 그곳에서 경쟁해야 한다”고 밝혔다.

NSS는 특히 ‘제1 도련선’을 방어하는데 필요한 역량에 집중해야 한다며 한국과 일본의 방위비 분담 증액을 촉구했다. 제1 도련선은 일본 규슈 남단부터 대만과 필리핀을 연결하는 방어선으로 중국의 태평양 확장을 견제하는 의미로 해석된다. NSS는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과 한국에 방위비 부담 증대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만큼, 이들 국가가 방위비를 더 늘리도록 압박해야 한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2025년 케네디센터 명예의 전당 수상자 시상식에서 가수 글로리아 게이너에게 메달을 수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NSS는 대만에 대한 중국의 압박에 반대한다는 뜻도 명확히 했다. NSS는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대만을 둘러싼 충돌을 억제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며 “미국은 대만 해협에서의 현상을 일방적으로 변경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희토류 공급망에 대한 위협과 합성 마약 펜타닐 원료 수출, 국가 주도의 보조금 및 산업전략, 불공정한 무역 관행 등을 종식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하며 중국을 겨냥했다.

NSS는 ‘대서양 동맹’인 유럽에 대해서는 “문명의 소멸(civilizational erasure)이라는 엄혹한 전망”을 맞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유럽의 이민 정책 탓에 특정 국가들이 비(非)유럽계가 다수인 국가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국내총생산(GDP) 5% 국방비 지출을 강조하며 이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가 러시아를 억제하는데 전념한다고 밝힌 것과 달리, 트럼프 행정부의 이번 NSS에는 러시아 견제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NSS가 서반구(북미와 중남미, 카리브해 국가 등)에서의 안보 전략을 강조한 것도 눈에 띄는 대목다. NSS는 “미국으로의 대규모 이주를 방지하고 억제할 수 있을 정도로 안정적이고 통치 가능한 상태를 유지하기를 원한다”며 “우리는 또한 마약 테러 조직, 카르텔, 기타 초국가적 범죄조직에 맞서 미국과 협력하는 정부들을 원한다”고 했다. 남미로부터의 마약 유입과 불법 이민 등을 차단하는 데 초점을 맞추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NSS는 이를 “먼로 독트린에 대한 트럼프의 보완”이라고 설명했다. 먼로 독트린은 19세기 제임스 먼로 대통령이 표명한 정책을 가리키는 것으로, 서반구는 미국의 세력권이며 미국이 최상위 강대국으로 군림해야 한다고 선언했던 입장을 의미한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번 NSS에 대해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지해 온 글로벌 초강대국 역할에서 벗어나도록 한다”며 “군사력이 가장 강한 국가들이 이웃 국가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 세계를 영향권으로 분할하는 더 오래된 형태의 강대국 체제를 수용하느 방향으로 전환했다”고 평가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