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거리를 밝히는 이들에게, 15년째 건네는 따뜻한 한 끼

입력 2025-12-07 09:00 수정 2025-12-07 09:00
지난 5일 서울 성북구 명륜진사갈비 성균관대점에서 열린 ‘성북구 공무관 초청 위로회’에서 하늘이음교회가 성북구청 청소행정과 공무관 130여 명을 초청해 식사를 대접하고 있다. 하늘이음교회 제공

지난 5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한 식당. 두툼한 패딩점퍼가 식당 한쪽에 빼곡히 걸리고, 푸른 상자에는 공무관들을 위한 양말 선물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성북구청 청소행정과 공무관 130여명이 자리를 채우자 산타 모자를 눌러쓴 하늘이음교회(이상일 목사) 성도들이 분주히 물잔을 채우고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공무관들을 격려하기 위해 구청장과 구청관계자들도 자리했다.

“올해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상일 담임목사의 인사와 함께 식사 기도가 울리자 박수가 터졌고, 이내 따뜻한 점심과 웃음소리가 식당을 가득 메웠다. 하늘이음교회가 15년째 이어오는 ‘환경공무관 초청 위로회’ 풍경이다.

서울 성북구에 있는 하늘이음교회가 지역구 환경공무관들을 초청해 식사를 대접하기 시작한 것은 단순한 관심에서 비롯됐다. 성북구 곳곳에서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지는 쓰레기, 길거리에 쌓이는 눈 낙엽 먼지와의 싸움까지…. 교회는 “그 모든 일을 묵묵히 감당하는 이들이 누구인가”를 생각했고, 자연스럽게 환경공무관들을 떠올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새벽과 깊은 밤, 가장 힘든 현장을 지키는 이들을 향한 존경심이 사역의 씨앗이 됐다.

이 목사는 사역의 출발을 이렇게 설명했다. “환경미화원도 공무원입니다. 그런데 가장 힘든 일을 하시지요. 새벽과 밤에 그분들이 쏟아붓는 수고를 보면서, 우리가 이분들께 따뜻한 식사 한 끼라도 대접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 사역은 구청과의 긴밀한 협력 위에서 이뤄진다. 구청장과 직원 5~6명이 매년 참석하고, 날짜 조율과 장소 선정도 함께 논의한다. 행사 당일엔 식사 이후 레크리에이션과 경품추첨이 이어지고, 돌아가는 공무관들에게는 남녀별 양말 세트가 나눠진다.
지난 5일 ‘성북구 공무관 초청 위로회’에서 산타 모자를 쓰고 봉사하던 하늘이음교회 성도들이 볼하트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하늘이음교회 제공

행사의 실무는 대부분 교회 성도 20여명이 맡는다. 상차림과 안내, 고기 굽기, 선물 포장까지 전 과정을 책임진다. 교회 총여선교회장으로 오랜 기간 이 사역을 섬겨온 김종원(54) 권사는 “섬길 수 있다는 게 감사하다”며 “필요한 곳을 돕는다는 생각에 기쁨으로 헌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초청받은 환경공무관들은 이 행사를 “우리의 노고를 알아주는 유일한 자리”라고 표현했다. 20여년째 현장을 지키는 최도영(51)씨는 “환경공무관의 헌신을 지역사회가 인정하고 격려하는 뜻깊은 시간”이라며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가 만들어지고, 공무관들도 자긍심을 느낄 수 있다. 추첨 선물보다도 ‘누군가 우리의 수고를 기억해준다’는 사실이 더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지난 5일 ‘성북구 공무관 초청 위로회’에서 성북구 공무관들이 미소를 지으며 고기를 굽고 있다. 이중에는 작업복 차림의 공무관도 보인다. 하늘이음교회 제공

김호경(49)씨도 “10년째 거의 매년 참석하는 이유는 따뜻한 밥 한 끼가 주는 위로 때문”이라며 “‘내가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구나’라는 말을 간접적으로라도 듣게 되는 이 자리를 동료들과 함께 ‘따뜻한 보금자리’처럼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한 고참 공무관의 말을 떠올렸다. “쓰레기와 날씨랑 싸우다 보면 지쳐서 서러울 때가 있는데 오늘 같은 날 대접받으니 눈물이 난다더군요. 우리도 같이 울컥했어요.”

이 목사는 이 사역이 15년간 끊기지 않은 이유를 묻자 두 가지를 말했다. 첫째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단순한 마음이었다. 그는 “주님은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눅 22:27)고 하셨다”며 “당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당신과 같이 섬기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그 다음은 교회의 비전이다. 하늘이음교회는 ‘하늘과 이어져 세상을 축복하는 교회’를 비전으로 삼고, ‘가장 낮은 모습으로 섬김’을 실천해왔다. 환경공무관 섬김은 그 비전의 한 부분이다.
(맨 왼쪽부터) 김종훈 하늘이음교회 장로, 성북구청 직원, 이승로 성북구청장, 이상일 하늘이음교회 목사의 모습. 하늘이음교회 제공

이 목사는 “사역을 15년 하다 보니, 교회가 가진 사랑과 섬김의 마음이 진심인 것을 지역사회가 알게 됐다”며 “이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했다. 이어 “일회성 행사라면 구청도, 주민들도 알지 못했을 것 같다”며 “진심은 통한다는 걸 우리 교회는 경험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 섬김 사역을 고민하는 교회들에 이렇게 조언했다. “일단 교회 주변을 돌아보고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면 좋겠다”며 “하고자 하면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있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이 목사는 어윈 라파엘 맥마너스의 ‘코뿔소 교회가 온다’를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교회는 안전지대 안에 머무는 공동체가 아니라 세상 속으로 나아가 섬기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할 수 있습니다. 하면 됩니다.”

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