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마블을 인수하고 겨울왕국·어벤져스 시리즈 등을 흥행시키며 디즈니 ‘제2의 황금기’를 이끈 밥 아이거 월트디즈니 최고경영자(CEO)를 이을 디즈니 왕국 후계자 경쟁이 시작됐다. 이사회는 2026년 초 차기 CEO를 공식 발표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최종 조율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1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차기 CEO 유력 후보로는 디즈니월드 등 테마파크, 디즈니크루즈, 의류·장난감 등 소비재를 아우르는 ‘익스피리언스(Experiences)’ 부문을 이끄는 조시 디아마로와 디즈니 엔터테인먼트 공동의장 데이나 월던이 꼽힌다.
2005년 CEO에 오른 아이거는 픽사·마블·루카스필름·21세기폭스를 잇달아 인수하며 디즈니의 전성기를 다시금 열었다. 아이거 재임 당시 겨울왕국, 모아나, 주토피아, 어벤져스 시리즈 등 영화들이 대 흥행하며 박스오피스를 지배했다. 그는 2020년 퇴임했다가 경영상 혼란이 이어지자 2022년 전격 복귀했고 지난해 계약을 2026년 말까지 연장했다. 디즈니는 ‘포스트 아이거’를 찾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가장 주목받는 이는 ‘디즈니 토박이’ 디아마로다. 테마파크 부문과 협업해온 할리우드 창작자들과 소통이 원활하며 디즈니 브랜드를 대외적으로 알리는 데 능한 리더십이 강점으로 꼽힌다. 1998년 입사한 정통 디즈니 출신이라는 점도 이사회가 높게 평가하는 대목이다. 그는 지난해 게임(엔진) 개발사 에픽게임즈에 15억달러(약 2조원) 투자를 주도하며 게임 기술을 디즈니 창작 과정 전반에 통합하는 전략을 선보였다.
쟁쟁한 경쟁자인 월던은 2019년 디즈니가 21세폭스 엔터테인먼트 부문을 인수할 때 합류한 인물로 정통 디즈니파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월던이 회사에서 가장 경험이 풍부하고 성과로 입증된 ‘크리에이티브 총괄’이라고 평가한다. 흥행한 영화·드라마 등 콘텐츠가 디즈니 전체 사업을 움직이는 핵심 동력이라는 차원에서 월던의 강점이 더 부각된다는 것이다. 월던은 디즈니플러스 등 스트리밍 부문 수익성 개선을 이끌었고 유튜브와의 송출 분쟁, ‘지미 키멜 라이브’ 일시 중단 사태 등 민감한 이슈들을 매끄럽게 관리했다는 평가다.
픽사·루카스필름·아바타 브랜드를 총괄하는 앨런 버그먼과 ESPN 수장 지미 피타로도 거론되지만, 내부에서는 두 사람이 후임이 될 가능성은 낮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피타로는 본인이 “CEO 자리를 기대하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후임 CEO가 맞닥뜨릴 과제는 만만찮다. 디즈니는 600억 달러 규모의 테마파크 확장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고, 디즈니플러스, Hulu 등 스트리밍 서비스는 치열한 경쟁 속 수익성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마블 등 핵심 영화 브랜드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는 작업도 숙제로 꼽힌다. 여기에 코드 컷팅(유료 TV 해지) 흐름이 ABC·ESPN 등 기존 TV 사업을 꾸준히 압박하면서 디즈니 전체 포트폴리오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고 WSJ는 짚었다.
이사회는 공동 CEO 체제 가능성에 대해서는 공식 언급을 삼가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강력한 2인자와 함께하는 단일 CEO 체제’ 같은 대안도 거론된다. 디즈니는 내부 임원들이 경쟁에서 탈락하더라도 조직을 떠나지 않도록 계약 연장을 통한 보상과 직무 확대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거가 만들어온 ‘디즈니 제국’의 다음 장을 누가 이끌지는 내년 초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