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르완다 내전의 참혹한 현장. 부모를 잃은 수십만 명의 고아들이 거리를 메웠고 희망 없는 눈빛만이 세상을 맴돌았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던 사업가이자 한인 교계 신문을 운영하던 서른 여덟 살의 청년은 단순 취재를 목적으로 아프리카 땅을 밟았다.
그곳에서 그는 도망칠 수 없는 영혼의 부르심을 들었다. 고아들을 보면서 ‘그냥 1년만 돕겠다’고 생각한 그다. 하지만 내면에서 ‘네 아버지는 교회 10개를 개척했는데 너는 무엇을 하니. 보육원을 할 수 있지 않겠니’라는 강력한 성령의 음성을 들었다.
목회자의 아들로 그동안 사역자의 부르심에 머뭇거렸던 그는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기로 했다. 그 순종의 시작은 30년 아프리카 선교의 서막이 됐다. 배낭 하나 메고 아프리카로 들어선 그는 월드미션 프론티어 대표인 김평육(69) 선교사로 현재 비슷한 시기에 우간다 탄자니아 르완다에서 종합대학 개교를 앞에 두고 있다. 잠시 한국을 방문한 김 선교사를 지난 1일 인천 연수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구제→복음→교육
김 선교사의 30년 사역은 명확한 비전 아래 세 단계를 거치며 진행됐다. 르완다 내전의 상흔을 치유하기 위한 1기 구제 사역(94~2000년)을 시작으로 2000년 1월 피그미족 선교지에서 복음의 힘을 체험한 후 복음대회(2기: 2001년~2010년) 운동으로 전환해 5개국(우간다 르완다 탄자니아 콩고 부룬디)을 순회했다. 이후 2012년부터 현재까지 대학 설립에 집중하는 3기 교육 사역으로 이어졌다. 그는 “현재 5개국 15개 선교센터에서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운영 중”이라며 “모든 것은 아프리카 대륙의 미래가 교육에 달려 있다는 확신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길은 고난과 방해의 연속이었다. 대학 설립 과정에서 지역 당국의 방해로 현지인 사역 책임자가 유치장까지 가는 수모를 겪고 재정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과제 등이 끊임없었다. 자력으로 감당하기 힘든 재정의 무게는 때로는 짐이 아닌 고통이었다.
김 선교사는 “매달 월말이 되면 급여를 주지 못해 많이 어렵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하지만 그는 어떤 큰 교단이나 조직의 정기적인 후원 없이 오직 기도로만 이 험난한 길을 걸어왔다. 심지어 한 권사님이 깡통을 주워 모은 헌금 475달러(약 70만 원)가 절망의 순간 사역을 이어가게 한 생명줄이 된 적도 있었다.
3개국 종합대학 인가·개교 잇달아
이처럼 30년간 눈물과 기도로 준비된 사역은 마침내 놀라운 열매를 맺었다. 탄자니아 SWMFCAT(Sengerema World Mission Frontier Collage of Agriculture & Technology)가 이달 개교했고 우간다 UWMF(University of World Mission Frontier)는 지난 9월 인가를 받아 내년 2월 말 개교 및 입학식을 앞두고 있다. 르완다 ATU(Africa Transformation University)도 내년 9월 인가와 개교를 준비 중이다. 이는 월드미션 프론티어의 ‘비전 2030’의 가장 핵심적인 성취였다.
탄자니아 SWMFCAT는 세 나라 중 가장 먼저 문을 열었다. 여러 과정 끝에 최종 심사를 거쳐 농업과 IT 학과를 중심으로 이달 11월 정식 개교했다. 이는 식량난과 기술 격차 해소라는 탄자니아의 핵심 과제를 해결하는 데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1996년부터 땅을 확보하고 건축해온 우간다 UWMF 신학부는 2021년 이미 공식 인증을 받았다. IT 비즈니스 등 실용 학문을 가르칠 일반 학부는 올해 9월 인가를 받았고 내년 2월 말 개교 및 입학식을 개최할 예정이다. 우간다 UWMF는 주변국 목회자들의 신학교육 산실을 넘어 아프리카의 산업 발전을 이끌 인재를 양성하는 요람이 될 준비를 마쳤다.
르완다에서 2018년 신학교 폐쇄 통보를 받자 김 선교사는 오히려 이를 기회 삼아 정부가 원하는 과학기술, 비즈니스, 교육 중심의 종합대학인 ATU대학교 설립을 추진했다. 특히 데이터 사이언스(Data Science) 등 미래 산업 분야와 E-상거래, 세무 경영 등을 포함하는 실용적인 학과를 중심으로 개교를 준비하고 있다. 현재 ATU는 5층 신축 건물을 완공했으며 내년 9월 인가와 개교를 목표로 절차를 진행 중이다.
고난을 이긴 힘
이 모든 사역의 원동력은 기도였다. 2000년부터 24년간 중보기도팀이 매주 기도했고 김 선교사 자신도 매년 금식기도를 이어왔다. 그는 중보기도팀의 간증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매 순간 사역을 이끌었음을 확신했다고 밝혔다.
그의 사역 철학은 철저한 현지화다. 처음부터 NGO로 시작해 모든 조직을 현지인으로 구성했으며 30년간 재정을 보내면서도 영수증을 요구하지 않는 신뢰를 바탕으로 현지인 중심의 자립을 추구했다. 이는 서구 중심의 선교 방식에서 벗어나 아프리카 현지 교단 및 리더십을 세우는 데 중점을 둔 전략이었다.
김 선교사는 한국교회를 향해 아프리카는 “우리나라의 70년대처럼 엄청나게 일어나고 있는 기회의 땅”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대학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은퇴 후 연금 백만 원으로도 현지 활동이 가능한 교수, 기술자문 등 고급 전문 인력의 현지 활용을 제안했다. 한국 교회의 전문 인력들이 아프리카의 교육 선교에 이바지할 수 있는 길을 열어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리고 청년들을 향해서는 “아프리카가 청년 세대에게 새로운 소명과 비전의 땅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인천=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