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리에 종영한 tvN 드라마 ‘태풍상사’의 영업팀 직원 오미선은, 그를 연기한 배우 김민하(30)와 똑 닮았다. 성실하고 다정하면서도 인간적 매력이 넘친다. “원하는 목표가 있으면 경주마처럼 달리는 점이 가장 비슷한 것 같아요. 저 스스로 꽤 성실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미선이에 비하면 한참 부족하네요.”
서울 용산구 한 카페에서 지난달 26일 만난 김민하는 오랜 친구에 대해 얘기하듯 아련하고 따뜻한 표정으로 미선 캐릭터를 설명했다. 그는 “K장녀로서 미선이는 가족을 건사하기 위해 대학 진학의 꿈마저 포기한다”며 “(주어진 상황을) 묵묵히 받아내고 인정하면서 내일을 살아내는 모습이 무척 듬직했다”고 말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를 배경으로 한 ‘태풍상사’는 초보 사장 강태풍(이준호)과 직원들이 역경을 딛고 다시 회사를 일으키는 과정을 그렸다. 1995년생인 김민하는 자료를 찾아보고 주변에 물어가며 당시 시대 분위기를 익혔다면서 “IMF를 견딘 가장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 시절을 이겨내고 자신을 지켜낸 일이 가장 큰 성공이 아닌가 싶다”고 했다.
그간 ‘조명가게’(디즈니+·2024) ‘내가 죽기 일주일 전’(티빙·2025)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리즈는 여럿 선보였으나 TV 드라마 주연은 처음이다. 그는 “시청자 반응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게 신기했다. 방송 다음 날 시청률이 (성적표처럼) 숫자로 딱 나오는 건 심장이 떨렸다”며 “이렇게 매주 다음 회를 기다리는 게 드라마의 묘미구나 싶었다. 많은 걸 배웠다”고 돌이켰다.
2016년 데뷔한 김민하가 대중적 주목을 받은 건 2022년 애플TV+ 드라마 ‘파친코’를 통해서였다. 극 중 일제강점기에 일본 오사카로 건너가 갖은 차별과 핍박을 받으며 고된 삶을 살아낸 선자 역을 맡아 호평받았다. 꾸밈없이 말갛고 수수한 그의 얼굴이 인물에 현실성을 부여한다. 극 안에서가 아닌 우리 주변 어딘가에 살고 있을 법한 평범한 사람으로 그려내는 것이다.
김민하는 “캐릭터를 구현할 때 지독하게 현실적으로 표현하려 최대한 노력한다. 실존하는 인물로 보여야 그의 감정과 이야기가 설득된다고 생각한다. 연기하는 나의 취향이자 신념”이라며 “그런 이유로 내가 ‘파친코’나 ‘태풍상사’처럼 위기를 이겨내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할 때 시청자들이 더 좋게 봐주시는 게 아닐까 싶다”고 얘기했다.
김민하는 대다수 작품에서 주근깨도 다 가리지 않은 채 화장기 없이 자연스러운 얼굴로 등장한다. 잡티 하나 없이 뽀얀 피부, 뼈가 드러나 보일 정도로 빼빼 마른 체형 등 여성 배우들이 흔히 추구하는 전형적 미의 기준을 따르지 않는다. 그는 “있는 그대로의 제 모습을 사랑해 주시는 게 감사하다”며 “세상 모든 이들은 자기만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민하는 “배우 일을 시작할 때 ‘주근깨 없애고 살 빼라. 그러지 않으면 데뷔 못한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배역을 위해 체중감량이 필요하다면 당연히 임하겠지만, 그저 ‘배우가 왜 저렇게 뚱뚱해’라는 말은 받아들이기 힘들다”면서 “배우는 다양성을 이야기하는 사람인데 왜 모두가 똑같은 기준을 따라야 하는지 모르겠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자리잡히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김민하의 일상은 연기를 더 잘하려는 노력으로 점철된다. 책을 더 읽고, 음악을 더 듣고, 틈날 때마다 여행가는 일이 모두 그렇다. 그는 “연기는 상상의 분야이기 때문에 상상력을 넓히고자 영감이 되는 것들을 쫓아다닌다”며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으로 만드는 게 연기의 매력인 것 같다”고 미소를 지었다.
연기에 대한 욕심과 열정이 그만큼 크다.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역할을 묻는 말에 그는 “중세시대 이야기를 좋아해 넷플릭스 시리즈 ‘브리저튼’ 같은 작품을 해보고 싶다. 영화 ‘국보’나 ‘블랙스완’처럼 내면의 밑바닥까지 보여주는 처절함도 연기해 보고 싶다. 팀 버튼 영화 같은 판타지 장르도 좋다”면서 “몸이 두 개였으면 좋겠다. 너무 하고 싶은 게 많다”며 웃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