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피할 권리? 생명 주권 침해?” 기독교계, 조력존엄사 두고 격론

입력 2025-11-28 17:20 수정 2025-11-28 17:36
28일 서울 성동구 성락성결교회에서 열린 ‘기독교인이 바라보는 조력존엄사’ 세미나에서 발제자들이 종합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충구 감신대 명예교수, 안해용 한국기독교목회지원네트워크 부원장, 이길찬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사무총장.

기독교계 내부에서 ‘조력존엄사’ 도입을 두고 찬반 입장이 팽팽히 맞섰다. 한국기독교목회지원네트워크가 28일 서울 성동구 성락성결교회에서 주최한 세미나에서는 환자의 고통을 덜기 위해 자기결정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과 조력존엄사는 생명 경시 풍조를 조장하는 ‘자살 방조’일 뿐이라는 반론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이날 발제와 토론에서는 ‘죽음의 시기’와 ‘고통의 정의’를 두고 발제자와 참석자 간의 논쟁이 이어졌다. 박충구 감신대 명예교수는 한국교회에서 보수적 가치관을 갖고 있는 목회자들이 과거의 생명 윤리관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현대 의학적 연명으로 인해 통제 불가능한 고통을 겪으며 유병 장수하는 시대가 됐다”며 “회복 가능성이 없는 상태에서 극심한 고통을 겪는 환자에게 무조건적인 생존을 강요하는 것은 가혹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네덜란드와 벨기에 등의 사례를 들며,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하는 국제적 흐름을 언급했다.

박충구 감신대 명예교수가 28일 세미나에서 ‘의료조력사는 왜 합법화되고 있는가’를 주제로,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세계적 추세에 대해 발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길찬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사무총장은 “조력존엄사는 의사조력자살이며, 이는 생명의 주권자인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 사무총장은 “현대 의학은 마약성 진통제 등을 통해 육체적 고통의 상당 부분을 조절할 수 있다”며 “극단적인 사례를 들어 자살을 권리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반박했다. 그는 조력존엄사 도입이 경제적 취약계층을 죽음으로 내모는 사회적 압력이 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토론 시간에는 현직 의사가 플로어에서 발언권을 얻어 의학적 견해를 밝히며 논쟁에 가세했다. 자신을 내과 의사라고 밝힌 한 참석자는 “임종기(Imminent)와 말기(Terminal)는 의학적으로 다르다”며 박 교수의 주장을 반박했다. 그는 “임종기는 혈압이 떨어지고 의식이 저하되는 사망 임박 단계지만, 말기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며 삶을 정리할 수 있는 기간”이라며 “말기 환자에게 죽음을 선택하게 하는 것은 의료 윤리의 ‘악행 금지 원칙’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이길찬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사무총장이 28일 세미나에서 조력존엄사 법제화가 가져올 생명 경시 풍조와 위험성에 대해 반대 토론을 하고 있다.

이에 박 교수는 “현재의 연명의료결정법은 임종기 환자에 국한되어 있어, 수개월 이상 고통을 겪어야 하는 말기 환자들의 현실을 담아내지 못한다”고 재반박했다. 그는 “치매 말기나 루게릭병 등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기 어려운 특수 상황에 대한 신학적, 윤리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응수했다.

‘자살’을 바라보는 관점에서도 차이가 드러났다. 이 사무총장은 “조력존엄사는 미화된 자살일 뿐이며, 고통 속에서도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자연사를 맞이하는 것이 진정한 존엄”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박 교수는 “전통적으로 자살을 금기시했으나, 순교나 희생적 죽음처럼 가치를 지닌 죽음도 존재한다”며 “극심한 고통 속에서 이성을 가지고 선택하는 죽음을 무조건적인 죄악으로 단정 짓는 것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안해용 한국기독교목회지원네트워크 부원장이 28일 열린 세미나에서 조력존엄사의 개념과 법률적 쟁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양측은 대안 마련에서도 시각차를 보였다. 반대 측은 호스피스·완화의료 시설 확충과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캠페인 등을 통해 ‘돌봄’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찬성 측은 현재의 의료 시스템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원치 않는 생존’의 사각지대가 존재함을 인정하고 제도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맞섰다.

이날 사회를 맡은 안해용 목사는 “이번 세미나는 결론을 내리기보다, 그동안 논의되지 않았던 죽음의 자기결정권 문제를 공론화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교회가 교리에만 갇히지 않고 고통받는 환자들의 현실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지 지속적인 성찰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글·사진=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