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백화점 잠실점 월드파크는 ‘롯데타운 크리스마스 마켓’을 찾은 방문객들로 북적였다. 입구 밖에는 정원이 차 들어가지 못한 방문객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그때 음악이 울려 퍼지자 멀리 붉은 하트 조명이 광장 중앙의 대형 트리를 향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트가 트리에 닿는 순간 조명이 한꺼번에 켜졌고, 곧이어 눈발이 흩날리자 “와”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머리와 어깨 위로 눈이 내려앉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린시절로 돌아간 듯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화려한 조명과 음악, 정교한 연출이 만들어내는 감각적 경험에 백화점 방문이 하나의 ‘연말 의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겨울밤 조명이 켜지는 순간 백화점은 더 이상 쇼핑하는 공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가족·연인·친구와 함께 경험하고 추억을 만드는 장소로 변모한다. 온라인 쇼핑이 일상이 된 시대에도 이때만큼은 오프라인 백화점이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는 이유다.
트리 앞엔 이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한 방문객들의 줄이 길게 늘어섰다. 머라이어 캐리의 유명 캐럴 ‘올 아이 원트 포 크리스마스 이즈 유’(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가 흘러나오자 따라 부르며 춤을 추는 사람들도 있었다. 외국인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리사(30)씨는 “틱톡에서 보고 왔는데 영상보다 훨씬 예쁘다”며 사진을 찍었다. 독일에서 온 교환학생 알렉산드라(21)씨는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에너지가 좋다. 독일의 크리스마스 마켓이 떠올라 집에 온 것 같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백화점이 체험형 공간으로 변신하면서 소셜미디어에서는 방문 인증샷이 활발히 공유된다.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관심이 커지자 업계는 매년 ‘전년보다 더 크게, 더 화려하게’ 업그레이드하며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방문객이 늘면 매출 확대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당일 주요 백화점 3사의 매출은 전년 대비 약 20% 증가했다.
이번 롯데타운 크리스마스 마켓도 역대 최대인 2645㎡(약 800평) 규모로 내년 1월 4일까지 46일간 진행된다. 팝업스토어·기프트숍·먹거리상점 등 51개 부스가 빼곡히 들어섰다. 30명이 동시에 탑승할 수 있는 2층 회전목마, 인공 눈을 분사해 ‘인생샷’을 남길 수 있는 ‘스노우 샤워’ 등 몰입형 연출이 강화됐다.
2023년 시작한 롯데 크리스마스 마켓은 첫해 24만명, 지난해엔 40만명을 동원하며 수도권 최대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줄 서지 않는 ‘패스트 패스’ 입장권을 전년 대비 20% 확대했지만 주말 기준으로 1·2차 예약 모두 약 10분 만에 매진됐다.
지난해 처음 선보였던 ‘위시월’도 다시 마련됐다. 한 해를 돌아보고 다가올 새해를 응원하는 마음이 벽면을 가득 채웠다. 롯데백화점은 출판사 위즈덤하우스와 함께 일부 메시지를 선정해 소정의 선물을 제공할 예정이다. 가족과 함께 이곳을 찾은 차윤재(6)군은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다들 건강하면 제 마음이 행복하다”고 소원을 적었다.
올해 롯데는 외벽 조명 연출도 확대했다. ‘스위트 홀리데이’를 테마로 본점과 잠실점 외벽에 3만개 LED 조명을 설치했다. 프랑스 일러스트레이터 ‘나탈리 레테’와 협업해 따스한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담았다. 서울 중구 본점은 본관을 넘어 에비뉴엘, 영플라자 벽면도 함께 꾸몄다. 신관부터 본관까지 이어지는 약 100m 거리엔 디오라마를 활용해 ‘움직이는 쇼윈도’를 선보이며 명동 일대를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물들이고 있다.
크리스마스 백화점의 원조로 불리는 신세계백화점 본점도 파사드를 대폭 확대했다. 신세계스퀘어 크리스마스 영상은 기존보다 61.3㎡(18.5평) 확장해 농구장 세 개 크기를 뛰어넘는 총 1353.64㎡(409.5평) 규모로 지난 7일 막을 올렸다. 3분여가량 이어지는 영상에 하얀 곰을 닮은 솜뭉치 캐릭터 ‘푸빌라’가 등장해 관람객을 맞이한다. 체코필하모닉의 연주와 착시 원리를 활용한 ‘아나몰픽 기법’을 적용해 마치 화면 안으로 들어간 듯한 몰입감을 구현했다. 지난해 100만명이 넘게 찾은 만큼 올해도 국내외 방문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강남점과 본점에서 ‘신세계 원더랜드’ 크리스마스 마켓도 운영 중이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시즌으로 쇼핑과 여가, 미식을 아우르는 공간으로 구성했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신세계와 참여 브랜드가 협업해 디자인한 원더랜드 한정 오너먼트 등 스페셜 에디션 상품을 선보인다. 오직 오프라인 매장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이색적인 크리스마스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백화점은 더현대 서울에 승부를 걸었다. 지난 1일부터 ‘해리의 크리스마스 공방’을 주제로 크리스마스 테마 연출을 선보이고 있다. 올해는 H빌리지에 들어선 산타의 집과 편지·선물·포장 공방, 루돌프의 집 등 ‘코티지’(전통적인 시골집)를 콘셉트로 공간을 구현했다. 선물을 싣고 달리는 미니 기차, 전 세계 마을을 표현한 디오라마, 선물 포장을 돕는 키네틱 아트(움직임이 있는 예술작품) 조형물, 부엉이들이 날려 보내는 편지 연출 등이 볼거리다.
최근 진행된 세 차례 예약이 모두 20~30분 만에 마감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14일 예약 없이 찾은 더현대 서울 크리스마스 공간은 대기 등록부터 입장 안내까지 2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주중엔 약 6000명, 주말엔 1만명 가량의 방문객이 이곳을 찾는다.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 ‘인증샷 명소’로 주목받으면서 지난해까지 누적 방문객 수는 100만명을 넘어섰다.
연출을 총괄한 정민규 현대백화점 VMD팀 책임 디자이너는 “‘클릭’과 ‘터치’ 한 번으로 간편하게 선물과 메시지를 전하는 요즘 시대에, 점점 잊혀져 가는 ‘손의 온기’와 ‘진심 어린 교감’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싶었다”며 “손편지, 수공예처럼 손으로 마음을 전하는 과정을 이미지로 표현하는 데 특히 집중했다”고 말했다.
신주은 기자 ju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