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부호 풀면 계좌번호 나와요”…중고거래 기상천외 꼼수 등장한 까닭은

입력 2025-11-30 07:02


최근 중고거래 플랫폼 번개장터의 채팅창에서 일반적인 언어로는 알아들을 수 없는 기상천외한 대화가 오가고 있다. 높은 수수료와 직거래 유도 차단 정책을 피하기 위해 이용자들이 만들어 낸 나름의 방책이다. 플랫폼이 채팅창에서 직거래 유도 정보를 자동 탐지해 차단하자 수수료를 피하려는 이용자들이 정상 검색이 되지 않는 방식으로 연락처나 계좌번호를 공유하기 시작한 결과다. 모스부호나 외계어식 외국어 조합, 심지어 이모지 속에 숫자나 의미를 숨기는 방식까지 등장했다.

30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수수료 회피를 위한 다양한 ‘꼼수 노하우’가 활발히 공유되고 있었다. 계좌번호를 점(.)과 대시(-)로만 이뤄진 모스부호로 보내며 “변환사이트로 암호를 변환해달라”는 요청이 대표적이다.

농협은행을 ‘농업인이 사용하는 은행(이모티콘)’으로, 현금은 ‘m0n2y’(money)와 같이 알파벳과 숫자를 섞어 표현하기도 한다. ‘수수료’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것만으로 계정 정지가 될 수 있어 대화는 더욱 은밀해지고 있다. “강아지·고양이 사진 속에 계좌번호가 숨어 있다”는 설명까지 등장하자 일각에서는 “마약을 거래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이러한 상황이 빚어지게 된 배경에는 번개장터의 수수료 인상이 핵심 요인으로 작용했다. 번개장터는 지난 9월부터 일반 판매자의 판매 수수료를 3.5%에서 6%로, 전문 판매자는 최대 10%까지 인상했다. 회사 측은 “이번 수수료 인상분인 2.5%를 번개머니를 통해 되돌려주는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실제 체감 수수료는 비슷할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판매자들의 불만은 갈수록 커지는 양상이다.

경쟁 플랫폼들과 비교하면 번개장터의 수수료 부담은 더욱 두드러진다. 중고나라는 판매 방식에 따라 구매자에게 0~3.5%의 수수료를 부과한다. 2만원 이하 안전결제는 수수료를 받지 않는다. 당근마켓은 지역 광고에 기반한 수익 구조 덕분에 일반 거래에서는 수수료가 없다. ‘당근비즈니스’나 ‘안심결제’ 이용 시에만 3.3%가 적용된다. 번개장터의 높은 수수료 부담이 결국 플랫폼을 벗어난 직거래를 부추기고, 이를 위해 암호화된 표현까지 만들어냈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수수료를 피한 직거래가 거래 안전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중고거래 사기 피해액은 3340억원이었다. 전년(1373억원) 대비 배 이상 폭증했다. 플랫폼의 안전결제 시스템을 우회하는 대화가 늘어날수록 사기 예방을 위한 보호장치가 무력화되기 때문이다. 플랫폼이 설치한 보호장치가 오히려 ‘위험한 직거래 환경’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플랫폼 입장도 복잡하다. 번개장터는 2020년 사모펀드에 인수된 이후 매년 적자를 기록 중인 만성 적자 기업이다. 지난해 기준 매출은 449억원이었지만 영업손실은 196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매출 1891억원과 영업이익 376억원을 기록하며 2년 연속 흑자를 달성한 당근마켓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국내 중고거래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는 추세다. 한국인터넷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중고 거래 시장 규모는 2008년 4조원에서 2023년 26조원, 올해는 43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 성장세가 커갈수록 탄탄한 수익구조를 마련해야 하는데 수수료에 의존해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중고거래가 보편화하는 상황에서 이같은 현상은 재미나 편법의 문제라기보단 이용자들이 느끼는 비용 부담이 실제 행동 변화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이용자들 입장에서는 번개장터가 ‘적자 부담을 이용자에게 전가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다연 기자 id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