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로 1만4천명 떠난 한국… 청년들 “우리 자연사하자”

입력 2025-11-23 16:26 수정 2025-11-23 16:29
서울여대대학교회 청년들이 23일 서울 마포대교 위에서 '죽지마 대한민국'이라고 적힌 깃발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서울여대대학교회 제공

“편의점보다 교회가 더 많다는 한국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스스로 삶을 포기한다는 건 큰 모순입니다.”

김요한 서울여대대학교회(김범식 목사) 교육목사는 23일 서울 마포구 마포대교 위에서 강을 내려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김 목사와 교회 청년들은 이날 마포대교 인근 마포종점나들목에서 ‘죽지마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의 특별야외예배를 열고 마포대교 일대를 걸으며 생명 존중 메시지를 전했다.

청년들이 거리로 나온 이유는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사망·자살 지표 악화와도 맞닿아 있다. 통계청 ‘2024년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사망자 수는 35만8569명으로 전년보다 6058명(1.7%) 증가했다. 이 가운데 자살은 1만4872명으로 894명(6.4%) 늘었다. 자살사망률은 인구 10만 명당 29.1명으로 201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하루 평균 40.6명이 생을 마감한 셈이다. 연령대로는 30대, 40대, 50대 순으로 자살률이 높았다. OECD 연령표준화 자살률 기준 한국은 인구 10만 명당 26.2명으로 OECD 평균(10.8명)의 약 2.4배에 달했다.

예배는 거리 공연 형식으로 진행됐다. 현장에는 ‘죽지마 대한민국’이라고 적힌 깃발과 풍선, 따뜻한 음료를 나누는 커피차가 배치됐고 지나가던 시민들도 일부 발걸음을 멈춰 음악을 들었다. 150여명의 청년들은 찬양을 부르고 기도했고 긴 줄로 서로의 몸을 길게 이어 묶었다. 서로 안전망이 되자는 의미를 담은 퍼포먼스다.

김요한 서울여대대학교회 교육목사가 23일 서울 마포대교 인근 마포종점나들목에서 열린 길거리 예배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다.

김 목사는 설교에서 “오늘 예배는 하나님의 마음에 동참하는 자리”라며 “죽지마 대한민국이라는 외침은 세상 향한 절규 이전에 하나님이 이 땅에 주시는 말씀이다. 교회는 ‘내가 너를 보고 있다. 너는 혼자가 아니다. 살아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는 공동체”라고 말했다.

예배를 마친 청년들은 일곱 개 조로 나뉘어 마포대교 방향으로 이동했다. 다리 위에서는 잠시 침묵 기도가 이어졌다. 일부 참가자는 난간을 붙잡고 도시를 바라보며 생명과 회복을 위해 기도했다. 한때 ‘자살의 다리’로 불렸던 공간에서 절망이 아닌 새로운 희망이 돋아나길 요청하는 기도였다. 초겨울 강풍이 불었지만, 청년들은 자리를 오래 지켰다. 김 목사는 “이곳은 누군가에게 지난 상처를 떠올리게 할 수 있는 자리”라며 “함께 걸으며 기도하는 행위가 죽음이 아닌 생명을 선택하라는 고백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다리 끝에는 고정 카메라가 설치돼 있었다. 청년들은 카메라 앞에서 5초씩 ‘지금 힘든 사람에게 건네고 싶은 말’을 남겼다. “오늘만 버티자”, “너는 사라져도 되는 사람이 아니다”, “네 편이 있다” 등 짧지만 진심 어린 문장이 담겼다. 영상은 추후 편집을 거쳐 온라인에 게시될 예정이다.

서울여대대학교회 청년들이 23일 서울 마포대교 위에서 다리 난간을 붙잡고 기도하고 있다. 서울여대대학교회 제공

허지선(30) 서울여대대학교회 청년부 회장은 “자살률이 계속 높아지는 도시에서 교회가 생명의 언어를 외면하지 않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설명했다. 참석자 윤진석(34)씨는 “수치를 뉴스로만 접했을 때와 달리 오늘은 그 현실이 낯설지 않았다”며 “절망이 반복되는 도시에서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윤씨는 “누군가에게 남기는 말 같았지만 결국 나 자신에게 건네는 말이었다”고 덧붙였다.

교회는 이번 행사를 단회성 이벤트로 보지 않고 청년 사역과 지역사회 연계를 위한 출발점으로 삼을 계획이다. 김 목사는 끝으로 “자살률이 OECD 최고 수준이라는 현실 속에서 교회가 책임 있게 반응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며 “상담기관, 청년단체 등과 협력도 교회 차원에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여대대학교회 청년들이 23일 서울 마포대교 인근 마포종점나들목에서 길거리 예배를 드리는 모습.

글·사진=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