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에 평생을 바친 이들 품에 장미꽃 한 아름이

입력 2025-11-14 17:20 수정 2025-11-14 19:55
한국교회 통일선교의 밤'에서 '통일선교 공로상'을 수상한 벤토레이(왼쪽) 신부가 13일 서울 종로구 새문안교회에서 '축복의 시간'에 한 참석자로부터 장미꽃 한 송이를 건네받고 있다.

‘아주 먼 옛날’ 찬양이 울려 퍼지는 예배당에서 객석을 채운 통일선교 동역자들이 하나둘 일어나 무대 앞으로 나아갔다. 이들의 손에 들린 장미꽃은 아버지 고(故) 대천덕 신부를 대신해 선 대명자(옌시 토레이)씨와 ‘4대째 사명’을 이어받은 아들 벤 토레이 신부, 통일 노래를 만드는 김한별 작곡가와 통일을 주제로 글을 쓰는 조경일 작가 등 수상자들에게 차례로 안겼다. 13일 서울 종로구 새문안교회에서 “사랑해요 축복해요. 당신의 마음에 우리의 사랑을 드려요”라는 가사의 노랫말이 끝날 무렵 이들의 품에는 장미꽃이 한아름 안겨 있었다.

이날 선교통일한국협의회(대표회장 황성주 목사) 주최로 열린 ‘한국교회 통일선교의 밤’에선 ‘당신을 격려합니다’라는 주제 아래, 얼어붙은 남북 관계 속에서 묵묵히 현장을 지키는 통일선교 사역자들이 서로를 격려하고 ‘하나 됨’을 다짐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한국교회 통일선교의 밤'에 참석한 통일선교 동역자들이 수상자들을 향해 찬양을 하면서 축하하고 있다. 일부 참석자의 손에 장미꽃 한 송이가 들려 있다.

격려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수상자들을 위한 찬양이 끝나자 “사랑해요 축복해요. 당신의 마음에 우리의 사랑을 드려요” ‘아주 먼 옛날’이 다시 한번 울려 퍼졌다. 이번에는 객석의 동역자 모두가 묵묵히 같은 길을 걷는 서로를 향해 부르는 축복이었다.

참석자들은 옆자리 동역자의 손을 붙잡았다. 통로를 사이에 두고 손을 맞잡기도 하고, 서로를 향해 두 팔을 벌려 안으며 웃었다. 70대 원로 사역자와 20대 청년이 “통일 코리아를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열심히 하고 같이 가 봅시다”라는 마음으로 서로를 격려했다.

벤 토레이 신부와 리즈 토레이 사모 부부, 옌시 토레이, 박우철 선교사, 조경일 작가와 김한별 작곡가(왼쪽부터)가 14일 서울 종로구 새문안교회에서 열린 한국교회 통일선교의 밤에서 동역자들에게 받은 장미꽃을 한아름 안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통일선교 공로상’은 예수원을 설립해 통일 비전을 심은 고(故) 대천덕(아처 토레이) 신부와, 그 사역을 이어 ‘네 번째 강’ 프로젝트를 이끄는 아들 벤 토레이 신부에게 돌아갔다. ‘우리가 축복하는 단체’는 호남에서 탈북민과 고려인들의 ‘친정’ 역할을 하는 광주 뉴코리아 비전센터가, ‘우리가 응원하는 다음 세대’ 상은 통일을 주제로 글을 쓰는 탈북민 조경일 작가와 통일 노래를 만드는 김한별 작곡가가 받았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축사 보내 ‘통일선교 공로상’을 수상한 부자(父子) 신부에게 “두 부자 신부님께서 대를 이어 전해주신 화해의 가치는 한반도 평화의 토양을 다지는 찬란한 자산”이라고 경의를 표했다.

‘한국교회 통일선교의 밤’ 참석자들이 '축복의 시간'에 자리에서 일어나 통로를 사이에 두고 서로의 손을 맞잡으며 기도하고 있다.


아버지를 대신해 상을 받은 명자씨는 아버지의 유지를 전했다. 그는 “아버지는 우리나라의 통일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하셨다”며 “통일을 위해서는 교회가 하나 될 때 하나님께서 통일을 이루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벤 토레이 신부는 선교사 4대에 걸친 사명의 핵심을 짚었다. 그는 2002년 아버지가 소천한 후 “북한 해방을 준비해야 하지만 제일 중요한 준비는 남한 교회가 하나 되어야 한다는 것”이라는 부르심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한국교회 통일선교의 밤' 참석자들이 '축복의 시간'에 옆자리 동역자의 손을 맞잡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그의 사명은 강원도 태백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생명수의 강을 지키는 ‘레위인’이었다. 이는 태백 삼수령에서 시작된 비전이다. 삼수령의 물은 동·서·남쪽으로 흐르지만, 북쪽으로 흐르는 강은 없다. 벤 토레이 신부는 “북한을 향한 생명수의 강, ‘네 번째 강’이 필요하다”는 아버지의 비전을 이었다. 그는 수상 소감에서 “레위인이 다른 사람들이 와서 제사 바칠 수 있도록 성전을 지켰던 것처럼, 네 번째 강을 지키고 있다”며 “사람들이 와서 이 한반도가 하나가 되기 위해 기도할 수 있도록 필요한 장소”라고 이들 부자의 사명을 말했다.

격려는 지금과 미래로도 향했다. ‘우리가 응원하는 다음세대’ 상을 받은 김한별 작곡가는 “올해가 통일을 노래하고 작곡한 지 10년이 되는 해”라며 “음악으로 같이 공감하고 소통하는 싱어송라이터로 성장하고 싶다”고 말했다. 공동 수상자인 탈북민 조경일 작가는 “내가 이 땅에 온 이유, 나를 통해서 하시는 일들이 있구나”라고 소감을 밝혔고, ‘우리가 축복하는 단체’로 선정된 광주 ‘뉴코리아 비전센터’의 박우철 선교사는 “탈북민들이 이제 수혜 대상이 아니라 섬기고 나눌 수 있는 힘이 생겼다”고 현장을 전했다.

글·사진=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