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배송 중 숨진 33세 쿠팡 배송기사가 주 6일 고정 철야근무를 하면서 자유롭게 쉬지 못했다는 유가족의 진술이 나왔다. 고인의 업무 단톡방에서는 하루 12시간씩 15일 연속 근무한 새벽배송 기사도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강민욱 민주노총 전국택배노조 쿠팡택배본부 준비위원장은 “쿠팡CLS와 계약한 택배 대리점 소속 배송기사들의 근무 일정표가 외부로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그동안 쿠팡 측이 ‘7일 이상 근무할 수 없는 구조’라고 주장해 온 내용이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새벽, 제주시 오라2동에서 배송 중 전신주를 들이받아 사망한 고 오승용씨의 유가족은 14일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인은 쉬고 싶을 때 쉴 수 없는 구조 속에서 일해왔다”고 말했다.
고인의 아내는 기자회견 도중 어렵게 마이크를 잡고 “남편이 휴무를 요청하면 그 쪽(대리점)에서 ‘어렵다’ ‘이직하는 게 낫다’는 식으로 답했다”며, 해당 내용이 남편의 카카오톡 대화에 남아있다고 말했다.
이날 아내가 공개한 문자 내용을 보면 고인이 “27일 휴무될까요?”라고 묻자, 대리점 관계자가 “안됩니다. 원하시는 대로 하시려면 다른 곳으로 이직하셔야 될 것 같네요”라고 답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에 고인은 “아닙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답했다.
아내는 “남편이 아픈 첫째 아이 일로 쉬려했지만 못 쉰 날이 많았고, 주 6일 야간 근무를 하면서도 쉬는 날에 대리점 연락을 받고 다시 일하러 나간 적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과로 기준 초과…백업 인력도 부족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민주노총 택배노조의 제2차 진상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노조는 유족의 동의를 받아 고인의 휴대전화에 있는 쿠팡 업무 앱과 대리점 단톡방을 분석했다.
조사 결과, 고인은 오후 7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30분까지 하루 11시간 30분, 주 평균 69시간을 근무했다.
법적 과로사 기준에 따라 밤 10시 이후 근무시간에 30% 할증을 적용하면 고인의 근로시간은 주당 83.4시간으로 과로사 인정 기준을 크게 초과했다.
노조는 단톡방에 올라온 근무 일정을 분석해 고인 외에도 주 6일 연속 야간 근무가 만연했고, 심지어 15일 연속 야간 근무를 한 기사도 있었다고 밝혔다.
또 쿠팡CLS와 대리점 측이 밝힌 것과 달리, 배송기사 휴무 시 대체할 백업기사가 충분하지 않았다고도 설명했다.
노조 관계자는 “쿠팡은 기사 휴무 시 본사 직고용 인력인 ‘쿠팡친구’를 투입한다고 설명하지만, 대리점 평가 지표에서 본사 도움을 받으면 점수가 낮아져 실제로는 대리점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보근 문제를 해결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사고 원인, 졸음운전 아닐 가능성도
노조는 사고 현장 조사 결과도 공개했다.
조사 결과를 보면 고인은 중앙선을 넘어 반대편 화단 연석에 충돌한 뒤, 직선으로 주행해 사고 지점의 돌담과 가로등을 들이받았다.
도로에는 브레이크 흔적이 없었고, 핸들 조작없이 직진한 흔적이 남아 있어 단순 졸음운전이 아닐 가능성이 제기됐다.
노조 관계자는 “고인이 정상적인 운행 능력을 발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날 유가족은 이번 사고에 대해 쿠팡 측의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 두 아이가 살아갈 수 있도록 유가족을 위한 지원책 마련을 요구했다. 유가족은 또 “산재 신청을 진행하고, 쿠팡의 책임있는 태도가 나올 때까지 끝까지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10일 새벽 2시10분쯤, 제주시 오라2동의 한 도로에서 고인이 몰던 1t 화물차가 전신주를 들이받았다. 고인은 사고 직후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복부 장기 등에 큰 손상을 입고, 같은 날 오후 3시10분쯤 사망 판정을 받았다.
사고 당일 고인은 1차 배송에서 119개의 택배를 배달한 뒤, 2차 배송을 위해 쿠팡 캠프로 복귀하던 중 사고를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인은 지난 5일부터 7일까지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른 뒤, 8일 하루 휴식을 취하고 9일 출근했다가 이날 새벽 사고를 당했다. 고인에게는 아내와 8세, 6세 두 아들이 있다.
노조 관계자는 “일반 직장인들처럼 왜 쉬지 못하느냐고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있지만, 계약 형태에 따라 근로자가 휴식을 취하기 어려운 구조에 놓일 수밖에 없다”며 “이처럼 부당한 근로 조건을 외면한 채 단순히 직업 선택의 자유만을 강조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이며, 사회적인 개선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