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길을 거닐며 향기를 읽는 느낌이 들어요.”
지난 12일 서울 영등포구 더현대서울 5층에 열린 프래그런스 브랜드 ‘셀바티코(Selvatico)’ 팝업스토어. 한 방문객이 시향 후 남긴 소감은 ‘향기를 읽다’라는 이곳의 콘셉트를 명확히 보여줬다. 현대백화점의 ‘리딩파티’ 행사의 하나로 열린 이번 팝업은 지난 4일부터 녹색광선 출판사와 손잡고 방문객에게 향기를 ‘읽는’ 경험을 선사하고 있다.
셀바티코는 175년 역사의 프랑스 향료 기업 로베르떼 그룹이 주목한 국내 스타트업 ‘본작’의 뷰티 브랜드다. 로베르떼와 협업해 향수를 개발한 국내 첫 브랜드로, 지난해 7월에는 로베르떼의 투자 자회사 빌라블루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며 잠재력을 인정받았다.
이번 팝업스토어는 ‘향기를 읽다, 순간에 충실하다’는 슬로건 아래 프랑스 문학에서 영감을 받은 제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가령 셀바티코의 첫 향수 라인 ‘르 땅 흐트루베(되찾은 시간)’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관련된 제품이다. 소설 속 주인공은 홍차에 적신 마들렌 향기로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데, 정원진 셀바티코 디자인마케팅부 선임은 “잊고 있던 기억을 향기로 되살리는 ‘프루스트 효과’를 재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브랜드의 독특한 철학은 현장에서 방문객들의 뜨거운 반응으로 이어졌다. 향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옮겼다는 방문객도 적지 않았다. 향수 6개를 하나하나 시향한 김혜영(41)씨는 “제품마다 저마다의 이야기가 담긴 것 같다”며 “어렸을 적 제주도에서 엄마 손을 잡고 소나무 숲길을 걸었던 기억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이처럼 방문객이 향을 매개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게 만드는 것은 셀바티코만의 ‘도슨트 서비스’ 덕분이다.
직원은 향을 맡고 기억을 더듬는 고객에게 “혹시, 이런 게 떠오르지 않으세요?”라며 말을 건넨다. 그러면 고객은 “맞아요, 그때 이런 향을 맡았었던 것 같아요”라며 자신의 기억을 풀어놓는다. 정 선임은 “고객과 향수에 대해 대화하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기억의 순간’을 책장 넘기듯 읽는 경험을 선사한다”고 말했다.
셀바티코는 앞으로도 프랑스 문학과의 연결성을 강화해 브랜드 해리티지를 공고히 할 예정이다. 현재는 알베르 카뮈의 대표작 ‘이방인’에서 영감을 받은 새로운 향수 라인을 개발하고 있다. 녹색광선 출판사와 협업해 카뮈의 ‘계엄령’과 ‘결혼, 여름’을 함께 선보인 것은 하나의 ‘힌트’였던 셈이다.
한명오 기자 myung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