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 새벽배송 기사, 부친 발인 당일 “내일 출근할거야?” 문자 받아

입력 2025-11-12 17:16 수정 2025-11-12 20:10
10일 새벽, 배송 중 숨진 쿠팡 노동자의 빈소가 제주시의 한 장례식장에 마련돼 있다. 문정임 기자

새벽배송 중 전신주를 들이받아 사망한 33세 쿠팡 배송기사가 부친 발인 당일 대리점 관계자로부터 다음 날 출근 가능 여부를 묻는 문자 메시지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민주노총 전국택배노조 쿠팡택배본부 강민욱 준비위원장은 12일 제주시 부민장례식장 앞에서 열린 1차 자체 진상조사 결과 발표에서 “유족에게 받은 고인의 휴대전화에서 해당 문자 내역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강 위원장에 따르면 지난 7일 부친 발인 당일 대리점 관계자는 고인에게 “오늘까지 쉬고, 내일 출근할거야?”라고 물었고, 이에 고인은 “내일까지만 부탁드릴게요. 아버지상이라 힘드네요”라고 답했다.

강 위원장은 “이 대화는 배송에만 혈안이 된 쿠팡 배송 시스템의 단면을 보여준다”며 “대리점 관계자 개인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고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조에 따르면 고인은 지난 5일부터 7일까지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른 뒤, 8일 하루 휴식을 취하고 9일 출근했다.

쿠팡 새벽배송 기사의 근무시간은 오후 7시부터 다음 날 오전 7시까지로, 고인은 입출차 기준 하루 11시간 30분씩 주 6일 야간 노동을 지속해온 것으로 파악됐다.

주당 총 근무시간은 69시간이며, 야간 시간(밤 10시~아침 6시) 근무에 대해 30% 가산 적용하는 법적 과로사 인정 기준에 따라 환산하면 근무시간은 주당 총 83.4시간에 달한다.

이는 법적으로 허용되는 최대 주당 근무시간인 52시간을 31.4시간이나 초과한 수치다.

노조 관계자는 “고인은 장례 하루 뒤에 출근해 이틀 연속 철야노동에 노출되며 극심한 과로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며 “주당 근무시간은 지난해 산업재해(과로사)로 인정받은 쿠팡 배송기사 고 정슬기 씨의 74시간보다 10시간 더 많았다”고 설명했다.

앞서 10일 새벽 2시10분쯤, 제주시 오라2동의 한 도로에서 고인이 몰던 1t 화물차가 전신주를 들이받았다. 사고 직후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같은 날 오후 3시10분쯤 사망 판정을 받았다.

사고 당일 고인은 1차 배송에서 119개의 택배를 배달한 뒤, 2차 배송을 위해 쿠팡 캠프로 복귀하던 중 사고를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노조 관계자는 “11월은 택배 비수기지만 성수기에는 물량이 더 많다”며 “당일 입고된 물건은 당일 배송을 마쳐야 하는 구조가 과로를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이날 고인의 빈소를 찾아 유가족을 위로했다. 오 지사는 빈소 방문 후 기자실을 찾아 “매우 안타깝고, 상식적이지 않다”며 “도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