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새벽, 제주시에서 택배 배송 중 전신주를 들이 받아 사망한 30대 노동자가 사고 나흘 전 아내에게 “이틀만 더 쉬고 나가고 싶다”는 말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고인은 당시 아버지의 장례 절차를 진행 중이었으며, 피로가 겹치면서 이 같은 심경을 토로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그는 부친 발인 다음 날인 8일 하루만 휴식을 취한 뒤, 9일 다시 배송 업무에 복귀했다가 사고를 당했다.
12일 전국택배노조 제주지부에 따르면 고인은 오후 7시부터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12시간 근무하며, 하루 평균 350개 내외의 택배를 배송해 온 것으로 파악됐다.
근무 중에는 하루 2차례 쿠팡 캠프를 오가며 물품을 분류하고 배송하는 작업을 반복했다.
고인이 담당한 구역은 제주시 노형오거리에서 월랑초등학교 일대로, 엘리베이터가 없는 다세대 주택이 밀집해 있어 업무 강도가 높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인은 과거 전자제품 대리점에서 판매사원으로 일하다가 다른 택배사에서 배송 업무를 시작했고, 수입이 적어 쿠팡 새벽배송 일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가족에 따르면, 그는 1년 넘게 새벽배송을 하며 체중이 80㎏에서 60㎏으로 20㎏ 가량 감소했다.
고인은 8세, 6세 두 아들을 둔 가장이었다. 송경남 전국택배노조 제주지부장은 “첫째 아이가 아파 오후 3시 하교 이후에는 엄마가 집을 비울 수 없는 상황”이라며 “가족을 잃은 슬픔에 더해 생계까지 막막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노조에 따르면 고인은 부산에 본사를 둔 A택배대리점 소속 특수고용직 노동자였다. A사는 쿠팡과 계약을 맺고, 화물차를 소유한 직원을 고용해 배송 업무를 수행해왔다. 배송 수수료는 쿠팡이 A사로 지급하고, 대리점 수수료를 제외한 금액이 기사에게 전달되는 구조로 알려진다.
송 지부장은 “부친 발인 전 고인이 아내에게 휴식을 원한다는 뜻을 밝혔지만, 이 내용이 실제로 대리점에 전달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며 “유족으로부터 제공받은 고인의 휴대전화를 분석해 필요시 대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민주노총 제주본부는 12일 오전 10시 정부제주지방합동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쿠팡 새벽배송 노동자 사망사고 진상 규명과 특별근로감독”을 촉구했다. 이어 광주지방고용노동청 제주근로개선지도센터를 방문해 관련 서한을 전달했다.
앞서 10일 새벽 2시10분쯤, 제주시 오라2동의 한 도로에서 고인이 몰던 1t 화물차가 전신주를 들이받았다. 사고 직후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같은 날 오후 3시10분쯤 사망 판정을 받았다.
당시 그는 새벽배송 중 쿠팡 캠프에 물건을 가지러 오가는 상황에서 사고를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택배 노조에 따르면 제주지역에는 쿠팡 3개 캠프에서 60~70명의 새벽배송 노동자가 근무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