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의 권익을 대변하는 한국농아인협회가 전국 시도협회에 공문을 내려 특정 수어 활동가의 섭외·출입을 금지하거나 ‘섭외 가능 수어 강사 명단’을 배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른바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가 존재했던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수년 전 민원을 통해 이 같은 내용을 파악했음에도 방치하다 뒷북 대응에 나선 모습이다.
1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농아인협회는 2022년 5월 전국 17개 시도협회 및 16개 수어통역센터에 ‘수어활동가 관련 모든 섭외 금지 협조’ 공문을 발송했다. 여기엔 수어통역사 2명에 대해 통역 섭외 및 출입을 금지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대상자의 실명, 생년월일 등 개인정보가 비식별화 처리 없이 노출됐고, 주요 활동 이력까지 기재됐다. 이들 수어통역사들은 사실상 농아인협회가 독점하고 있는 수어 통역 일감에 접근이 차단됐던 것으로 파악됐다.
2023년부터는 일종의 화이트리스트가 전국에 배포됐다. 중앙회가 지난해 초 전국에 보낸 공문을 보면 “향후 17개 시도협회 및 200여곳의 지회에서 수어교육을 진행할 때 붙임의 외부강사 명단 외 프리랜서 수어통역사를 교육 강사로 섭외하는 것을 금지할 것을 요청한다”는 내용이 있다. “추후 적발 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경고도 덧붙였다.
실제로 외부강사 명단에서 제외된 이들은 예정됐던 수어 강의나 통역 일감을 빼앗겼다. 수어통역사 A씨는 지난해 초 시도협회 중 한 곳으로부터 강의 의뢰가 들어와 이를 수락했지만, 이틀 만에 돌연 섭외가 취소됐다. 이유를 문의하자 농아인협회 중앙회에서 내려온 강의 섭외 가능 외부강사 명단에 A씨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A씨는 이후 수년간 맡았던 다른 시도협회의 강의도 할 수 없게 됐다.
법조계에서는 별도의 규정 없이 강의 가능자 명단을 산하 기구에 공유한 것은 취업방해이자 업무방해로 볼 수 있다고 본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정당한 사유 없이 조직적 지시로 수어통역사의 활동을 봉쇄한 것은 업무방해가 성립될 수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최근 농아인협회의 각종 의혹이 불거지자 실지감사에 돌입해 이 같은 내용을 확인했다. 복지부는 이달 중 협회 전·현직 간부 4명에 대해 수사 의뢰할 예정이다.
복지부가 사안을 일찌감치 파악하고도 이를 방치하다 뒤늦게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복지부는 3년 전 국민신문고를 통해 블랙리스트 공문 관련 민원을 접수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복지부는 2022년 6월 “블랙리스트에 포함이 될까 봐 무섭다”는 민원인에게 “관계 법령 및 정관 목적 등 중대한 사항의 위반 이외에는 주무관청의 관리 감독은 최소한으로 한정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같은 사안을 두고 3년 전과 현재 대응이 180도 달라진 것이다. 한 수어통역사는 “복지부는 블랙리스트를 알고도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며 “관리·감독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했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