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련 선교사, 100여명 아이들에게 새 생명을 선물하다

입력 2025-11-02 00:37 수정 2025-11-02 10:06

찬란한 생명의 소식이 가을 하늘을 물들였다. 아이티에서 활동 중인 김혜련 선교사(59)가 올해도 심장병을 앓고 있는 세 명의 아이들을 한국으로 데려와 무료로 수술을 받게 했다.

한 해도 빠짐없이, 생명의 희망을 품은 아이들이 김 선교사의 손을 잡고 한국 땅을 밟은 지 어느덧 14년째다. “이 아이들이 숨을 고르게 쉬는 모습만 봐도… 그게 제겐 가장 큰 선물이에요.” 김 선교사는 수술을 마치고 회복 중인 아이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카리브해 연안의 세계 최빈국 아이티. 이 나라에 2010년 발생한 규모 7의 대지진은 작은 섬나라를 초토화했다. 세계 어디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재앙으로 기록됐고 사망자와 부상자 25만여명, 100여만명의 이재민을 만들었다. 사회기반시설도 대부분 파괴되었다.

더구나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이티의 의료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해 단순한 감염도 생명을 위협한다. 이 중에서도 특히 어린이들에게 나타나는 선천성 심장병은 ‘운명’처럼 받아들여 질 뿐, 치료는 꿈도 꾸기 어렵다. 그런 아이들을 위해 김혜련 선교사는 여전히 동분서주하며 직접 발로 뛰고 있다.


후원자를 찾고, 의료진과 병원을 연결하며, 서류와 항공권까지 손수 준비해야 한다. 그 여정의 끝에는 언제나 “한 생명이라도 더”라는 간절한 바람이 묻어 있다.

올해 수술을 받은 세 아이 중 한 명인 네 살 소녀 로즈 아이다는 태어날 때부터 심장이 약했다. 한국 도착 후 수술을 받은 엘리사는 병실 창가에 서서 난생처음으로 마음껏 숨을 쉰다.
“이제는 숨이 안 차요. 친구들이랑 뛰어놀고 싶어요.”

엘리사의 작은 목소리에 김 선교사의 눈가가 붉어졌다. 김혜련 선교사는 이렇게 말한다.
“아이티에서 만난 아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밝은 미소를 가지고 있어요. 그 미소를 오래 지켜주고 싶습니다.”


김 선교사는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2012년 당시 미국 뉴욕 UN에서 여성정책담당자로 근무하던 커리어 우먼이었다. 그런데 아이티 유엔으로 발령이 나서 가본 그곳의 모습은 그녀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늘 남보다 앞서며 살아왔건만 이 비참한 현장에서 고아와 과부를 돌보라는 주님의 명령이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었다.

즉시 유엔을 그만두고 아이티로 돌아와, 선교센터를 열고 정성껏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사랑으로 돌보았다. 그런데 사역 첫해에 한국에서 온 의사가 아이티 심장병 아이들 수술을 해주고 싶은데 같이 할 생각이 있느냐고 김 선교사에게 물어왔다.

의학 지식이 없었지만 무조건“좋다”고 했고 한 달 후에 올테니, 심장병 어린이 100명을 모아 달라고 한 약속을 지키느라 백방으로 뛰었다. 아이티에는 심장 수술을 해 줄 병원도 의사도 없었기에 매년 2000명의 아이가 심장병으로 사망하고 있었다. 어린이 환자를 100명을 모았고 이 중 8명을 선정해 한국으로 데려가 첫 아이티 심장환우들을 대상으로 심장 수술을 시작한 게 벌써 14년이 되었다.


지금까지 연세대 세브란스병원과 삼성서울병원 등에서 103명의 아이티 아이들에게 새생명을 주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한 심장병 수술사역은 과정 하나하나가 쉽지 않다. 환자 모으는 과정도 어렵지만, 출생신고서조차도 없는 아이들의 기초 서류를 만들어서 여권을 만들어내고, 또 미국 비자까지 받아야 하는 복잡한 행정적 과정이 필요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아이들과 부모들 200명이 넘는 사람들의 미국 비자 과정에서도 단 한 번도 거절당한 적이 없어 주변 외국인 선교단체들에서도 부러움을 살 정도다.

“그동안 수술 도중에 생명이 위험했던 아이들이 늘 있었지만, 한국의사 선생님들의 놀라운 기술과, 수많은 사람의 중보로 모두 귀한 생명을 살렸습니다. 이제는 아이티 의사들을 교육해 언젠가는 아이티에 심장센터를 세우고 아이티에서 수많은 생명을 살리는 일도 하게 되리라 기도하고 있습니다.”

김 선교사는 “내년에도 한국에서 새 생명을 되찾게 될 귀한 아이들을 생각하면 지금까지의 이 수고와 많은 분의 헌신이 결코 헛되지 않고 오히려 주님께 올려드리는 감사와 은혜만이 남는다.”고 말했다.

현재 아이티는 갱들 조직이 완전히 수도를 장악한 상태다. 이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지역인 시테솔레이에 김 선교사가 운영하는 학교가 있다. 그런데 단 한 번도 이 학교를 매일 오가면서 식량을 빼앗긴 적도 없고, 직원들이 총을 맞아 본 적도 없다. 이렇게 아이티에서 기적과 기적 속에서, 사역을 진행하면서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역사하심을 체험하고 있다는 것이 김 선교사의 설명이다.


김 선교사는 지난해 이런 사역의 공로로 스크랜튼상을 받았다. 스크랜튼상은 이화학당 설립자인 메리 스크랜튼(1832~1909)과 그의 아들 윌리엄 스크랜튼의 선교 정신을 따라 살아가는 이화여대 출신 선교사들을 격려하기 위해 2022년 유나이티드문화재단과 이화여대 동창회가 함께 제정했다.

“여러분의 관심과 지원과 기도가 절실합니다. 이 사역은 단순한 의료 지원을 넘어선 ‘생명 회복의 여정’입니다. 아울러 한 아이의 심장을 살리는 일은, 그 가족의 삶 전체를 다시 시작하게 하는 일입니다.” 김 선교사의 말처럼, 우리의 작은 관심과 손길이 또 다른 생명을 살릴 수 있다.

전병선 선임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