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네 살, 불꽃처럼 살다간 프로골퍼 故 ‘변현민’…“나를 잊지 말아요”

입력 2025-11-02 00:03 수정 2025-11-02 20:05
고 변현민이 2013 에쓰오일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해 목에 건 금메달을 들어 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고인은 작년 4월말에 뇌종양 투병 끝에 하늘의 별이 됐다. KLPGA

고 변현민이 2013 에쓰오일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스폰서 마스코트인 구도일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KLPGA

2일 제주도 제주시 엘리시안 제주(파72)에서 화려한 막을 내린 KLPGA투어 에쓰오일 챔피언십(총상금 10억 원)은 올해로 19회째를 맞았다. 2007년에 창설돼 코로나19 펜데믹 기간에도 거르지 않고 매년 열린 KLPGA투어의 간판 토너먼트다.

에쓰오일 챔피언십은 올해 대회 우승자 고지원(21·삼천리), 통산 두 차례 우승이 있는 박지영(29·한국토지신탁)과 전인지(31·KB금융그룹) 등 총 16명의 챔피언이 탄생시켰다. 천고마비의 계절 탓인지 그 중에서 오늘 따라 유독 생각나는 한 선수가 있다.

지난해 4월29일 뇌종양 투병 끝에 향년 34세의 꽃다운 나이로 하늘의 별이 된 2013년 대회 챔피언 故 변현민이다. 그가 우리들 곁을 떠난 지가 벌써 20개월이 되어 간다. 그러나 가을 하늘만큼이나 맑고 깨끗한 고인의 환한 미소는 아직도 팬들의 기억 속에서 생생하다.

고인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골프채를 처음 잡았다. 중학교 2학년 때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아버지가 간경화로 세상을 떠난 후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하며 골프를 그만둬야 하는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그는 절대 골프를 포기할 수 없었다.

물론 경제적 여건은 최악이었다. 한참 연습이 필요했던 주니어시절에는 연습 라운드 한 번 제대로 못했다. 프로 골퍼의 꿈을 꾸는 게 사치로 여겨질 정도였다. 그러나 고인은 꿋꿋이 골프에 정진했고 고3 때 마침내 꿈에 그리던 KLPGA 정회원 자격을 획득했다.

정회원에 입회하고 3년이 지나 고인은 KLPGA투어 히든밸리 여자오픈에서 생에 첫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통산 2승째인 2013년 에쓰오일 챔피언십은 2019년 은퇴 때까지 그가 생전에 거둔 마지막 우승이었다.

나이 서른에 갑작스런 그의 은퇴 소식도 당시로서는 고인을 아끼는 팬들에게는 커다란 충격이었다. 하지만 고인이 고심 끝에 은퇴를 결심하게 됐다는 걸 알고 나서는 “과연 그 답다”며 그의 인생 2막을 오히려 응원했다.

당시 고인은 “누구의 자리를 빼앗야 하는 치열한 경쟁에 지쳤다. 대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은퇴를 결심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었다.

고인은 어떤 상황에서도 잃지 않은 미소만큼이나 인성도 좋았다는 평가다. 캐디 비용이 없어 투어 활동 대부분 기간을 어머니가 캐디백을 맸지만 자신처럼 힘들게 운동을 하는 후배들을 위해 재능기부도 부족해 장학금까지 선뜻 내놓았다.

천사와 같은 마음으로 많은 기부 활동을 이어오던 고인은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는 ‘아이들과미래재단’ 홍보대사에 위촉돼 꾸준하게 재능기부, 후원활동, 자원봉사에 적극 나섰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그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은 “정작 본인 스스로 힘든 여건이었음에도 이타적인 삶으로 타의 모범이 되었던 착한 사람이 너무 일찍 우리들 곁을 떠났다”고 애도했다.

투어에서 동고동락했던 동료들도 이구동성으로 “고인을 싫어하는 선수는 없었다”라며 “어려운 환경에서 운동을 했지만 항상 밝고 자신감이 넘쳤으며 최선을 다했다”고 고인을 추억했다.

어쩌면 우리 골프계는 고인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있는 지도 모른다. 해외 투어의 경우 스타 플레이어가 갑작스럽게 타계하면 그의 이름을 딴 재단 혹은 장학회가 설립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런 점에서 고 변현민이 못다 이룬 꿈을 이제는 살아 있는 우리가 승계하는 게 어떨까라는 생각을 오지랖 넓게 해본다. 그 주체가 KLPGA이든, 에쓰오일 챔피언십 주최사이든 간에 고인의 유지를 잇는 첫 걸음을 내딛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올 에쓰오일 챔피언십은 전례없는 화창한 날씨 속에서 치러졌다. 그래서일까. 거의 매년 거르지 않고 대회 취재를 했지만 올해는 유난히 더 변현민의 환한 미소가 그리워진다. 다시 한번 고인의 영면을 기원한다.

제주시=정대균골프선임기자(golf5601@kmib.co.kr)

정대균 골프선임기자 golf56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