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재심서 무죄…이유보니

입력 2025-10-28 15:23 수정 2025-10-28 17:55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사건의 피고인 부녀가 28일 광주 동구 광주고등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사건 피고인들이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28일 받았다. 사건 발생 16년 만이다.

재판부는 이 사건 주요 증거였던 범행 자백이 ‘검찰 강압수사에 의한 허위 진술이었다’는 피고인 측 주장을 인정했다.

광주고법 형사2부(고법판사 이의영)는 살인 및 존속살인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75)와 딸 B씨(41) 항소심 재심에서 피고인들에게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20년을 선고했던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이날 선고했다.

28일 오후 광주 동구 광주고등법원 앞에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의 피고인이 사건 발생 16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연 기자회견에서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연합뉴스

재심 재판부는 피의자 신문 과정에서 조서 허위 작성과 자백 강요 등이 있었다면서 검찰 수사가 적법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A씨 등은 2009년 7월 6일 전남 순천 황전면 한 마을에서 청산가리가 섞인 막걸리를 주민들이 나눠 마시게 해 2명을 살해하고 2명에게 중상을 입힌 혐의로 기소됐다.

A씨와 B씨는 사망자의 남편과 딸이다.

A씨는 초등학교 2학년을 중퇴했는데, 자신의 이름 등 쉬운 단어를 제외하고 한글을 쓰고 읽는 일이 서툴렀다. 당시 20대 중반 나이이던 B씨 ‘경계성 지능장애’를 갖고 있어 독립적으로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웠다.

기록에 따르면 A씨와 B씨는 각각 장시간 이어진 신문을 마치고 불과 몇 분 만에 조서 열람을 마쳤다. 이들은 일련의 과정에서 진술 거부권을 비롯해 신뢰관계인 또는 변호인 참여권 등 권리를 누리지 못했다.

A씨는 논리 정연하게 쓰인 자필 진술서를 검찰에 제출했는데, 당시 검사 또는 수사관이 개입했다는 정황이 제기됐다.

부녀에게 생각을 주입하고 정해진 답변을 강요하는 듯한 진술 녹화영상은 유죄 판결이 내려졌던 2심 재판에선 검토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재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에게 유리한 증거가 재판에 제출되지 않았던 절차도 문제 삼았다. 해당 증거물은 검찰이 특정한 막걸리 구입 경로와 부녀 행적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긴 CCTV 영상 등이다.

A씨와 B씨는 2010년 2월 1심에선 무죄를 받았다.

그러나 2011년 2월 항소심 재판부가 판단을 뒤집어 부녀 중 A씨에겐 무기징역을, B씨에겐 징역 20년을 각각 선고했다. 이듬해 3월 대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됐다.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재심 선고공판이 열리는 28일 오후 광주 동구 광주고등법원 앞에서 피고인 부녀가 법정 안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핵심 증거인 청산가리가 막걸리에서는 검출됐지만 사건 현장 등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아울러 청산가리를 넣었다던 플라스틱 숟가락에서도 성분이 나오지 않아 판결 이후 논란은 이어졌다.

부녀는 대법원 판결 10년 뒤인 2022년 1월 “검사가 유죄 진술을 유도했다”며 재심을 청구했다.

이에 광주고등법원은 2024년 1월 “검사가 생각을 주입해 유도신문 하는 등 위법하게 수사권을 남용했다”며 재심 개시 결정을 내리고 A씨와 B씨를 석방했다.

검찰은 이번 판결에 대해 “내용을 면밀히 검토해 대법원 상고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