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승객들로 붐비는 버스 안. 한 여성이 승객들 사이를 비집고 앞문으로 향하더니 기사님 손에 뭔가를 쥐어주곤 도망치듯 내립니다.
승객에게 뜻밖의 선물 받은 버스 기사
서울 여의도와 도봉구를 오가는 160번 버스를 운행 중인 강재순 기사. 지난 9월 15일 오후 마포경찰서 정류장에서 중년의 여성 승객을 태웠는데, 이런, 잔액 부족이라는 멘트가 나옵니다. 다시 카드를 대는 승객. 역시나 잔액 부족입니다.
승객은 당황한 듯했어요. 이 버스는 현금 없는 버스고, 승객이 든 교통 카드는 선불 형태의 충전식 카드였거든요.게다가 승객은, 계좌이체에 익숙한 나이는 아닌 듯 보였어요. 이대로 내려야 하나. 하지만 그 순간, 기사님이 기지를 발휘합니다.
강재순 서울교통네트 웍 160번 버스기사
“어린이 요금으로 찍어도 괜찮을까요? 여쭤본 다음에 대신 환승이 되지 않습니다. 환승을 하셔야 된다며 다른 정류장에서 충전을 하셔가지고 재탑승 하셔야 됩니다. 이렇게 안내드리고...”
“어린이 요금으로 찍어도 괜찮을까요? 여쭤본 다음에 대신 환승이 되지 않습니다. 환승을 하셔야 된다며 다른 정류장에서 충전을 하셔가지고 재탑승 하셔야 됩니다. 이렇게 안내드리고...”
확인해보니 카드에는 잔액이 700원쯤 남아있었고, 어린이 요금은 550원여서, 기사님은 여성이 어린이 요금으로 승차 태그를 하고 목적지까지 갈 수 있도록 배려를 해준 거죠.
승객이 내린 건, 버스에 타고 20분쯤 뒤였어요. 맨 뒷좌석에 앉아 가던 승객은 종로5가를 지나 목적지로 향할 무렵, 자리에서 일어나 앞문 쪽으로 걸어왔습니다.
밀려 들어오는 승객들에게 양해를 구하면서 말입니다. 그러고는 기사님 손에 무언가를 쥐어주곤 황급히 내렸습니다. 승객이 건넨 물건은 차고지에 도착해서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강재순 서울교통네트 웍 160번 버스기사
“이게 뭐지(하고...) 열어 보니까 그분이 쪼그려 앉아 글을 쓰셨나 봐요. 거기에 만원짜리 한 장 들어있더라고요”
“이게 뭐지(하고...) 열어 보니까 그분이 쪼그려 앉아 글을 쓰셨나 봐요. 거기에 만원짜리 한 장 들어있더라고요”
쪽지엔 “폰을 잃어버렸는데 10분도 안 돼 누군가의 도움으로 찾게 됐고, 버스비 카드도 모자라는데 아이 요금으로 결제 해주신 배려도 잘 받았다”며 “두 곳에서 친절함을 받았으니 저도 뭔가 해야겠습니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기사님은 순간, 뭉클해졌다고 해요. 흔들리는 차 안에서 한글자씩 적었을 정성이 너무 감동적이었던 겁니다. 이 감동을 혼자만 간직하기 아까웠던 그는 온라인커뮤니티에 사연을 공유했죠. 닉네임 ‘귀여운재돌이’로 말입니다.
그런데 이 닉네임 왠지 익숙합니다. 그는 지난해 10월 여의도 불꽃축제가 있던 날 마포대교를 건널 때 불꽃을 잘 볼 수 있도록 실내등을 꺼준 주인공이거든요. 그 전에는 마포대교에 뜬 쌍무지개를 감상할 수 있게 승객들을 배려한 기사로도 유명하고요.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일반 사무직으로 근무하던 강 기사는 육아에 동참하기 위해 버스 기사라는 직업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교대 근무로 평일에 이틀을 쉬면서 아내의 독박육아 짐을 나눠진 거죠. 이후 딸 둘을 더 낳아 딸 부잣집이 됐다는 강 기사님. 버스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해 가끔씩 글을 쓰고 있다고 합니다.
강재순 서울교통네트 웍 160번 버스기사
“코로나 시즌 이후로는 많이 없어졌는데 그전에는 (승객들과) 소통도 많이 하고 대화도 많이 하고 재미있었거든요. 이 직업에 대한 애정이 많이 생긴 것 같습니다”
“코로나 시즌 이후로는 많이 없어졌는데 그전에는 (승객들과) 소통도 많이 하고 대화도 많이 하고 재미있었거든요. 이 직업에 대한 애정이 많이 생긴 것 같습니다”
▲ 영상으로 보기!
우리 사는 세상을 살만하게 만들어 주는
‘작은영웅’들의 이야기를 계속 들려드릴게요
유튜브에서 ‘KMIB(작은영웅)’을 검색하세요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