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의원 제명 촉구 결의안을 쏟아내고 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달여 간 발의된 제명안만 4건이다. 서로 상대 정당 소속 의원의 자격을 박탈하라며 벌이는 ‘제명 정치’는 정치 양극화 상황을 보여주는 단면이자 적대 정치를 더욱 부추긴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 의원 제명안이 국회를 통과한 건 지난 40여년 간 단 한건에 그친다는 점에서 여야가 제명안을 정쟁 도구로 활용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28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2대 국회 약 5개월간 접수된 제명안은 모두 9건에 이른다. 국민의힘이 제출한 제명안은 3건(전용기·전현희·최민희 민주당 의원), 더불어민주당이 제출한 제명안은 6건(윤상현·김민전·추경호·한기호·강선영·송석준 국민의힘 의원)이다.
이 가운데 지난달 비상계엄 후 발의된 제명안은 총 4건(추경호·김민전·전용기·윤상현 의원)이다. 민주당은 지난달 9일 추경호 의원이 비상계엄 당시 자당 의원들의 국회 도착을 의도적으로 늦춰 계엄 해제 요구 표결을 방해했다고 주장하며 제명안을 제출했다. 또 지난 10일엔 윤석열 대통령 체포 반대 시위대인 ‘백골단’의 국회 기자회견을 주선했다는 이유로 김민전 국민의힘 의원에 대한 제명안을 발의했다. 국민의힘도 지난 14일 ‘카카오톡으로 내란 선동 관련 가짜뉴스를 공유하면 고발하겠다’고 주장한 전용기 민주당 의원에 대해 “국민의 사상을 통제하는 전체주의적 발상”이라고 제명안을 내며 맞붙을 놨다.
특히 제명안 발의는 22대 국회 들어 20·21대에 비해 급격히 늘었다. 20대 국회 4년간 발의된 제명안은 단 한 건이었다. ‘5·18 망언’을 한 김순례·김진태·이종명 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의원 3명에 대한 제명안이었다.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제명안도 ‘50억 클럽’ 뇌물 수수 혐의를 받는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 정의기역연대 후원금 횡령 혐의를 받던 윤미향 전 민주당 의원에 대한 제명안 2건에 그쳤다.
탄핵 정국에서 여야가 서로를 겨냥한 제명안을 쏟아내고 있지만, 실제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헌법 64조 3항에 따르면 의원을 제명하려면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이상(200명)이 찬성해야 한다. 대통령 탄핵 소추안 가결 요건과 같다. 국회의원도 국민의 투표로 선출된다는 점에서 대통령에 준하는 까다로운 자격 박탈 요건을 만들어둔 것이다. 실제 표결에 부쳐진다 해도 여야 의석수를 감안하면 어느 쪽도 단독으로 제명안을 강행처리하기 어렵다.
더구나 의원을 제명하거나 징계하려면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심사를 거쳐야 하지만 22대 윤리특위는 구성조차 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보여주기식 제명안을 무분별한 정쟁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금까지 의원 제명안이 국회를 통과한 건 1979년 신민당 총재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김 전 대통령은 ‘뉴욕타임스’ 인터뷰를 통해 미국에 박정희 정권 지지를 철회해달라고 요청했다는 이유로 의원직에서 제명됐다. 김 전 대통령은 의원직 제명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야당 총재를 의회에서 추방하는 것은 의회 정치의 조종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22대 국회에서 김 전 대통령의 해당 발언이 재등장하기도 했다. ‘월담 훈방’ 발언으로 논란이 된 윤상현 의원은 지난 21일 야당이 본인에 대한 제명안을 제출하자 페이스북을 통해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저의 제명으로 의회독재와 대결정치가 종식된다면 기꺼이 정의의 제단에 몸을 던지겠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의 발언을 오마주해 제명안의 부당함을 호소한 것이다. 윤 의원은 지난 18일 서울서부지법 폭력 사태 당시 “젊은이들이 담장을 넘다 유치장에 있다 해서 관계자와 얘기했고, 아마 곧 훈방될 것이다. 애국시민께 감사드린다”고 발언했다가 야권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이강민 기자 riv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