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경기장을 떠난 스포츠 스타들이 ‘유튜브’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꾸준히 팬들과 소통하며 목소리를 내고 있다. 때로는 먹방, 여행 등 흥미를 유발하는 영상을 공유하기도 하지만 롱런하는 스포츠 스타 출신 유튜버들은 공통된 인기 요인을 갖고 있다. 각 종목의 발전을 위해 변화와 도전을 촉구하는 마음을 콘텐츠에 담아내 시청자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2002 월드컵 4강 멤버 이천수(축구), 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야구), 한국 최초의 NBA리거 하승진(농구) 등은 대표적인 스포츠 스타 출신 유튜버다. 각 종목에서 굵직한 발자취를 남긴 이들은 높은 대중적 인지도와 영향력을 갖고 있다. 스포츠계 각종 현안에 대한 솔직한 견해와 조언으로도 눈길을 끌고 있다.
현역 시절 풍운아였던 이천수는 유튜브에서도 가감 없이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A매치 리뷰는 물론 국제축구의 정세를 언급하며 한국 축구의 문제점을 짚기도 한다. 그는 “축구계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고 여러 차례 강조해 왔다. 민감한 이슈도 물러서지 않는다. 지난해 대표팀 내 선수단 불화가 불거지자 그는 “감독의 책임”이라고 잘라 말했다. 대표팀 감독 선임 논란에 대해선 “선배 축구인들이 못났다”는 말로 미안함을 표했다.
이대호는 유튜브에서 한국 야구의 발전 방향을 자주 언급한다. KBO리그 현안, 유망주들의 잘못된 성장 방식 등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동료 야구인과의 인터뷰에서 서로의 생각을 공유한다. 직접 아마추어 야구 현장을 찾아 고교선수들을 위한 원포인트 레슨을 진행하고 조언을 건네는 콘텐츠를 만들기도 한다. 최근 유망주 위주로 꾸려졌던 대표팀을 두고 “국가대표는 항상 최고 멤버로 구성해야 한다”는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국제대회 성적이 나와야 야구 인기가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승진은 ‘한국 농구가 망해가는 이유’라는 파격적인 영상을 들고 유튜브를 시작했다. 낡은 지도 및 훈련 방식, KBL의 잦은 규정 변화, 농구계 수직적 서열 문화 등을 요목조목 짚어냈다. 최근에는 귀화 혼혈선수였던 전태풍, 여자 대표팀 코치 출신 최윤아 등과 함께 프로 진출에 실패한 선수들의 신인드래프트 재도전기를 다룬 ‘턴오버’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전태풍은 한국 농구의 인기 회복과 관심 고조를 위해 일반인들과 일대일 대결을 펼치는 콘텐츠를 제작한다. 미국, 유럽 등에서 선진 농구를 경험했던 그는 한국에서 느낀 아쉬움을 솔직하게 표현하곤 한다.
이들은 은퇴 후 지도자나 행정가가 아닌 유튜버로 변신했다. 스포츠계에 직접적으로 몸담지 않고 있기에 날선 시각도 우회 없이 드러낼 수 있는 입장이다. 현실적인 변화를 주도하기 어려운 위치에 서 있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여론 환기만으로도 스포츠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상당하다.
한 종목 관계자는 “생태를 누구보다 잘 아는 은퇴 선수들이 유튜브를 통해 내는 목소리를 마냥 무시할 순 없다. 애정이 많다 보면 응당한 비판도 나온다”며 “몇몇 파격적인 발언들은 내부에서 회자되기도 했었다. 현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의견을 참고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