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동남부 하타이주 안타키아의 외곽 마을에 사는 하니 아타한(59)씨는 21일(현지시간) 간밤에 놀란 가슴을 또 한 번 쓸어내렸다. 지난 6일 안타키아 인근에서 발생한 진도 7.7 규모의 대지진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전날 저녁 8시쯤 진도 6.4의 여진이 또다시 발생한 것이다.
그의 집은 지진 후 위태롭게 골격만 유지한 채 버티고 서있었다. 건물 붕괴 위험 탓에 대문을 살짝 열어 엿본 그의 집 거실은 한 눈에도 폭탄 맞은 듯했다. 벽면은 무너져 내렸고, 천장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형광등과 어지럽게 널브러진 집기로 실내는 마치 폐가 같았다.
아타한씨는 “눈앞에 집을 두고도 들어가지 못해 앞뜰에 천막을 짓고 생활 중”이라며 “옆집에 살던 형네 가족 네 명까지 모두 9명이 겨우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그나마 아타한씨는 나은 편이다. 그는 “이웃 중에 소식이 닿지 않는 이가 많다”며 “어떤 상황인지 몰라 그저 막연하게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고 말했다.
한국교회와 튀르키예교회가 아타한씨처럼 대지진 피해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돕고자 함께 힘을 모으고 나섰다. 한국교회봉사단(한교봉)과 튀르키예한인사역자협의회(한사협)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현지 이재민 캠프에 긴급 구호 물품을 전달하며 현지의 필요를 살폈다. 우선적으로 텐트 40개와 침낭 20개를 비롯해 생필품 1000만원 어치와 복구 지원금 4000달러(약 400만원)를 지원했다.
김철훈 한교봉 사무총장과 장성호 한사협 비상대책위원장 등은 아타한씨에게도 한교봉이 준비한 1인용 텐트 2개와 침낭 2개를 전하며 위로를 건넸다.
아타한씨는 “지진만 아니었으면 뭐라도 대접해드렸을 텐데 죄송하다”면서 “받은 물품은 나보다 더 필요한 이들에게 전해주겠다. 형제국가인 한국에서 지속해서 도움을 주고 있다고 들었다. 그저 감사할 뿐이다”고 답했다.
아타한씨의 딸 오즈게(31)씨는 장 위원장이 인근 지역에서 담임 목회하는 안디옥개신교회 성도이기도 하다. 오즈게씨 역시 이재민이지만, 집 인근 하르비에 지역의 히드로공원에 차려진 이재민 캠프에서 한국에서 급파된 국제구호개발기구 기아대책을 도와 이재민들을 살피고 있다. 기아대책은 이재민에게 동계용품과 여성·유아용품, 샤워실 등을 제공 중이다.
한두리 기아대책 인도적지원팀 과장에 따르면 이 지역은 원래 2만7000명이 넘는 인구가 거주했으나, 현재는 절반 가까이 피난을 떠났다. 현지 재난관리지원청(AFAD)이 공식 인가한 이곳 캠프엔 현재 125개의 텐트가 설치됐고 계속 그 숫자는 늘고 있다. 차마 집을 떠나지 못하는 나머지 주민은 대부분 집 앞 공터에 임시 텐트를 쳐놓고 산다고 했다.
오즈게씨는 “내 고향이기에 지진 피해가 복구될 때까지 계속해서 고향 사람들을 돕고 싶다”며 “한국교회 성도님들께서도 우리를 위해 기도해달라. 우리에게 남은 건 오직 기도뿐이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김 사무총장은 “한순간에 모든 일상이 무너진 이들의 처참한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며 “오즈게처럼 재난 가운데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봉사할지를 고민하는 기독 청년의 모습을 보며 한국교회가 어떤 섬김의 자세를 보여야 할지를 생각해보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교회의 시작이 됐지만, 모슬렘이 99%를 차지하는 곳으로 변한 이 땅을 위해 한국교회가 올바른 신앙인의 모습과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섬김의 실천을 보이는 일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장 위원장도 “교파를 초월해 보내주신 많은 교회의 지원과 사랑에 감사드린다”며 “비록 이곳 그리스도인들의 수가 많지는 않지만, 튀르키예 밖의 많은 그리스도인이 보내주는 기도와 사랑을 모두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재난으로 인한 시련에 지친 성도의 마음을 잡아줄 수 있는 건 교회 공동체가 아닐까 한다”며 “앞으로 이곳에 어떤 교회 공동체를 세워나갈지를 그리고 이미 있는 공동체를 어떻게 도와야 현지인들을 잘 돌보고 섬길 수 있을지를 모색하며, 재건 사업 같은 큰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맡겨진 작은 겨자씨 같은 일들을 감당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한교봉도 이후 전 한국교회의 연합을 도모해 공동대책위원회를 만들고, 한사협과 협의하며 효과적이고 중·장기적인 튀르키예 지진 피해 지원 대책을 모색할 계획이다.
히드로공원 이재민 캠프에 들리기에 앞서 안디옥개신교회를 지난 19일에 이어 다시 찾았다. 지난밤 발생한 여진으로 더는 무너질 곳 없어 보였던 교회는 더 아래로 주저앉았다. 교회 앞길은 지난달만 해도 한국의 명동처럼 붐비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마치 하나의 전쟁 영화 세트장처럼 건물은 무너져 내렸고, 길 위엔 수많은 돌과 철근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안디옥개신교회 앞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한 건물 1층 유리창에 먼지가 껴있었다. 누군가 그 위에 손으로 이렇게 적었다.
‘Geri Doneceğiz Antakya(게리 도네제이즈 안타키아;우리는 안타키아로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안타키아(튀르키예)=글·사진 임보혁 특파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