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정세 안정을 위한 미·중 협력에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ETIM)이 최대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중국은 아프간을 재장악한 탈레반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탈레반이 신장 위구르족의 분리·독립을 내건 ETIM을 물밑 지원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ETIM을 테러 단체 목록에서 삭제했는데, 중국 전문가들은 미·중 협력의 전제 조건으로 이 단체에 대한 미국의 태도 변화를 요구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31일 탈레반이 국제사회에 편입될 수 있도록 미·중이 손을 잡을 수 있다면서도 신장 문제를 둘러싼 이견이 장애물이라고 분석했다. 탈레반은 30일(현지시간) 미군 철군 완료 직후 “완전한 독립을 얻었다”며 축포를 쏘아올렸지만 안팎으로 난제가 산적해 있다.
아프간은 국내총생산(GDP)의 40% 이상을 국제사회 원조에 의지할 만큼 경제 사정이 좋지 않다. 탈레반이 아프간을 다시 장악한 뒤로는 원조와 지원이 대부분 끊겼다. 탈레반 내부에서 ‘국제사회 일원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비관론이 확산돼 극단주의로 치닫는 건 미·중 모두가 경계하는 상황이다.
주융뱌오 란저우대 아프간연구센터 소장은 “미·중은 현지 상황에 근거해 아프간을 지원하고 서방 기준에 따라 무작정 탈레반에 가혹한 제재를 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탈레반이 테러 집단과 관계를 끊게 하려면 미국이 ETIM에 대한 태도부터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ETIM은 1990년대 초 중국 내 소수민족인 위구르족의 분리·독립을 위해 조직된 단체다. 2009년 신장의 수도 우루무치에서 발생한 대규모 분리·독립 시위를 비롯해 2014년 우루무치 기차역 폭탄 테러 등 중국 정부와 계속해서 갈등을 빚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간에는 ETIM 무장 세력 500여명이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2002년 ETIM을 테러 단체로 지정했다가 지난해 11월 “ETIM이 존재한다는 믿을 만한 증거가 없다”며 목록에서 삭제했다. 중국은 미국이 위구르족 분리·독립 세력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며 강력 반발했다.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지난 29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의 통화에서 “아프간에 이중 잣대를 적용하거나 선택적 대응을 하지 말라”고 주장한 데는 이러한 배경이 있다.
중국은 미군이 아프간에서 완전 철수한 30일(현지시간) “책임의 끝이 아니라 반성하고 잘못을 바로잡는 일의 시작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밝혔다. 환구시보에 따르면 겅솽 유엔 주재 중국 부대표는 이날 안보리 회의에서 “관련국이 아프간에 큰 재난을 일으키고 그냥 가버리면서 책임을 이웃 나라와 안보리에 떠넘겨서는 안 된다”며 “국제사회는 IS, 알카에다, ETIM 등을 단호히 타격해야 하며 이중 기준이나 선택적 방법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