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동남부 주유소에 기름이 말랐다…현실이 된 영화 스토리

입력 2021-05-13 06:09 수정 2021-05-13 09:48
미국 동부지역 송유관 운영회사, 랜섬웨어 공격 받아
노스캐롤라이나주 주유소 28%, 석유제품 바닥 나
샬럿·롤리 등 대도시에선 70% 이상 주유소 기름 동나
운전자들 ‘공포의 사재기’…기름 값도 폭등
바이든 “24시간 이내 좋은 소식 있을 것” 해결 자신감
바이든, 러시아 지목…러시아 “해킹 안 했다” 부인

미국 노스캐롤라니아주 아펙스의 한 주유소 앞에 12일(현지시간) 기름을 넣기 위한 차들이 길게 정차돼 있다. AP뉴시스

미국 동남부 주유소들에서 석유 제품이 바닥나고 있다.

미국 동부지역의 소비되는 연료의 45%를 공급하는 ‘콜로니얼 파이프라인’이 지난 7일 ‘랜섬웨어(돈을 요구하는 악성 프로그램)’ 공격을 받은 여파다.

영화에서 나오던 이야기가 현실이 된 것이다. AP통신은 “이번 해킹 공격은 다시 한 번 미국 주요 기반시설의 취약성에 대한 우려를 고조시켰다”고 지적했다.

콜로니얼 파이프라인은 텍사스주에서 뉴저지주까지 이르는, 5500마일(8850㎞)에 달하는 송유관을 통해 디젤유·가스·정제 제품·항공유 등을 운송하는 회사다.

이번 해킹 공격으로 인해 가장 피해가 큰 지역은 노스캐롤라이나주·조지아주·버지니아주 3개주다.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주유소들 중 28%가 사재기로 석유 제품이 바닥났다고 실시간 주유소 정보안내 회사 가스버디를 인용해 뉴욕타임스(NYT)가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NYT는 조지아주와 버지니아주에서도 17% 이상의 주유소들에서 기름이 동났다고 전했다. 석유가 바닥날 것을 우려한 운전자들이 주유소들에 몰려들면서 발생한 현상이다.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의 한 주유소에서 11일(현지시간) 기름이 바닥 나 ‘연료 없음(No Fuel)’이라고 쓰인 종이가 주유구 앞에 붙어있다. 신화통신·뉴시스

특히 대도시의 석유 부족 사태는 더욱 심각하다. 가스버디의 수석 분석가 패트릭 드 한은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샬럿·롤리·그린빌에서는 70% 이상의 주유소들에서 석유 제품이 완전히 바닥이 났고, 버지니아주의 노포크와 조지아주의 애틀랜타에서는 거의 60%에 달하는 주유소들에서 기름이 말랐다고 밝혔다.

NYT는 이들 지역의 석유 부족 사태가 더욱 악화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노스캐롤라이나주·조지아·버지니아·플로리다주는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기름 값도 폭등하고 있다. 미국 자동차협회(AAA)는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3.008달러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AP통신은 갤런당 3달러를 넘은 것은 2016년 이후 처음이라고 전했다.

사이버 공격을 당한 콜로니얼 파이프라인은 현재 시점에서 해커들에게 돈을 지불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고 NYT는 보도했다. 대신, 이 회사는 사이버 보안회사 맨디언트의 도움으로 백업 시스템에서 데이터들을 복구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콜로니얼 파이프라인은 지난 10일부터 일부 라인의 작업을 수동으로 재개했다. 또 이번 주말에는 대부분의 작업을 재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콜로니얼 파이프라인에 랜섬웨어 공격을 가한 단체를 ‘다크사이드’라는 신생 해커조직으로 지목했다.

AP통신은 다크사이드가 콜로니얼 파이프라인에 요구한 금액은 50만 달러(5억 6000만원)에서 500만달러(56억원) 이상일 수 있다고 맨디언트를 인용해 추정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2일 “앞으로 24시간 이내에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며 “우리는 (이 상황을) 제어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는 콜로니얼 파이프라인과 아주 긴밀하게 접촉해왔다”고 덧붙였다.

미국 언론들은 다크사이드와 러시아 간의 연관성을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다크사이드는 동유럽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러시아에 기반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도했다. NBC방송은 한발 더 나가 러시아의 범죄조직이 이번 사이버 공격에 책임이 있을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지난 10일 이번 해킹 사태와 관련해 “극도로 심각하게 받아 들인다”면서 강력한 대응을 시사했다.

그러면서 러시아를 겨냥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가 연루됐다는 증거는 없다”고 전제했다. 그러나 그는 “해커들의 랜섬웨어가 러시아에 있다는 증거는 있다”면서 “러시아는 이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일부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미국 송유관 운영업체에 대한 사이버 공격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