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제주지사는 “내년 대선은 문재인정부 5년간 쌓인 분노를 표출하는 선거가 될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이어 “지긋지긋한 ‘은둔형 대통령’과 ‘팬클럽 정치’를 깨야 한다는 국민적 욕구가 크다”고 했다. 원 지사는 자신이 구상하는 정책의 핵심 키워드로 노동·집·교육을 제시하면서 “미래 세대를 위해 기득권을 깨는 혁명적 조치들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일보는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에 있는 제주도청 서울본부에서 원 지사를 만났다. 그는 내년 6월로 예정된 지방선거 불출마를 선언하며 대권 도전을 위한 배수의 진을 친 상황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7월 전후 출마 선언…지사직 사퇴는 고민 중”
-공식적인 대선 출마 선언은 언제 할 예정인가.“구체적으로 어떤 나라를, 어떻게 만들기 위해, 어떤 사람들과 함께 해 나갈지에 대한 구상을 국민께 밝히는 것을 공식 선언이라고 한다면, 그 시점은 7월 전후가 되지 않을까 싶다. 다음 달 당 전당대회(6월 11일)는 지나야 할 것 같다. 지금은 당 지도부 구성의 드라마를 써야 하는 시점이고, 우리(대선주자)는 그 다음 드라마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제주지사직 사퇴는 언제로 생각하나.
“현재도 코로나19 위기 상황이라 지사직의 책임감이 가볍지 않다. 사실 도정 레임덕을 피하려면, 전략적으로 내년 지방선거 출마 여부에 대해 끝까지 모호한 입장을 취할 수도 있었지만, 정치인이라면 자기와 관련된 문제를 투명하고 명확하게 밝혀서 그 다음 상황에 대해 함께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봤다. 지사직 사퇴 여부나, 시점은 현재 ‘고민 중’이라고 하는 게 적절할 것 같다.”
-대선 출마를 결정한 이유는.
“지금의 대한민국은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이후 누적된 사회 양극화와 그로 인한 민생의 어려움이 심각한 상황이다. 사회 전체의 활기와 역동성도 매우 침체돼 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또 딸 둘을 키우는 아빠의 입장에서 ‘정말 이대로는 안 된다, 큰 전환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다. 또 저는 20년 간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소장파로 있으면서, 처음 정치를 시작할 때 마음먹었던 초심의 것들을 아직 발현하지 못했다.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고 저를 다 던지기로 했다.”
-언제 내년 대선 도전을 결심했나.
“2019년 조국 사태를 보면서, 그리고 코로나19 속에서 치러진 지난해 4·15 총선에서 우리 당이 참패하는 것을 보면서다. 세 번째 임기까지 제주도정을 맡으려는 것은 내 고유 영역만 지키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일·집·교육, 혁명적 조치 필요하다”
-지금의 시대정신은 무엇이라고 보나.“시대정신은 추상적이고 신비로운 것이 아니다. 그 시대가 가장 아파하는 지점, 그리고 이를 돌파하기 위한 방향이다. 지금 국민 전체는 민생 때문에 분노하고, 젊은 세대는 특히 불공정에 대해 분노한다. 내년 대선은 그동안 쌓였던 분노를 표출하는 선거일 수밖에 없다. 여당 대권주자들도 필요에 따라 문재인 대통령과 어마어마한 차별화를 할 수밖에 없다. 결국 내년 대선은 문재인정부에 대한 부정과 극복이 핵심 의제가 될 것이다. 이와 함께 대선은 미래에 대한 선택이기도 하다. 이 지긋지긋한 은둔형 대통령과 팬덤 정치, 적대적 팬클럽 정치를 깨야 한다는 국민적 욕구가 크다. 지금 막장까지 간 적대적 분열 정치를 끝내고 통합을 통해 미래로 가야한다는 게 시대적 요구다.”
-‘정책 브랜드’로 구상하는 게 있다면.
“분야로는 일과 집, 교육이다. 혁명적 조치가 필요하다. 그걸 통해서 중산층과 다음 세대를 책임지는 정치를 해야 한다. 노동의 경우 우선 일자리 안정망을 구축하고, 기업에서 투자 및 일자리 창출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결국은 노동개혁 문제로 가야 한다. 노동시장 내부의 기득권을 해결하지 못하면 젊은 세대의 일자리를 열어주는 게 불가능하다. 돈 몇 푼 나눠준다고, 청와대에 일자리 현황판을 만든다고 해서 해결 될 문제가 아니다.
집 문제는 싼값의 주택 공급 확대, 실수요자 지원, 투기 차단이라는 삼박자가 맞아야 한다. 교육 부문 역시 우선 사교육 시장의 기득권을 깨야 한다. 또 더 늦기 전에 인공지능(AI) 관련 교육을 집중 지원해 전 국민 ‘1인 1 AI(인공지능) 튜터’ 같은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당내 경선, 지지율 반등 계기 될 것”
-‘정치인 원희룡’의 차별성이 있다면.“박근혜·문재인 대통령을 저는 ‘은둔형 대통령’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들 대통령이나 지금 대선 후보군 중에도 수직적 리더십이 보인다. 저는 수직적 억압이 아니라 수평적인 소통을 아주 중시한다. 두 번째로 원희룡의 개혁성은 믿어도 된다. 겉모습만 화려한 개혁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각을 담고 있는 현실적인 개혁성을 20년 넘게 다져왔다.”
-이재명 경기지사의 ‘기본 시리즈’ 정책을 비판해 왔는데.
“돈을 똑같이 나눠준다면서, 그 재원은 어디서 거둘 것인가에 대해서는 말이 매번 바뀌지 않나. 기본소득이라는 게 효과도 크지 않고, 공정하지도 않다. 결국 국민 주머니에서 나와 국민 주머니로 들어가는 것이다. 정말 기본소득에 대해 철저히 파악한 뒤에도 지지할 사람들은 30% 정도나 될까 싶다. 현재 이 지사의 지지율이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결정적 이유도 기본시리즈라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원 지사 지지율은 높지 않다. 반등의 계기가 필요할 텐데.
“저의 진정성과 전면적 헌신 부분이 국민들에게 전달이 되면 점차 정치적 존재감도 커질 것이라 본다. 현재는 당으로 보면 전당대회의 시간이고, 대선주자로 보면 ‘윤석열의 시간’이다. 이건 주어진 여건이다. 전당대회가 끝난 뒤 7월까지 대선후보 당내 경선 엔트리가 정해지는 1차 시점, 각 정당의 본격적 내부 경선이 벌어지는 2차 시점이 반등 계기가 될 수 있다. 그 때도 당 밖에 유력주자가 있으면 최종 단일화를 하는 3차 시점도 있다. 저로서는 당내 후보 라인업이 구성돼 경선이 이뤄지는 과정을 승부처로 볼 수밖에 없다.”
-다른 주자들에 비해 당내 세력이 약한 것 아닌가.
“저는 재선 제주지사로서 중앙 정당정치와는 한발 떨어져있지 않았나. 출발점이 다른 건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제가 추구하는 리더십과, 저의 인간적 스타일, 저의 열정을 무기로 최대의 동지를 확보할 자신이 있다. 저는 동지적 결합이 가능한 사람이다. 어떤 계보보다는 동지들끼리의 ‘원팀’이 중요하다.”
-여야 관계없이 가장 강력한 대선 경쟁자를 꼽는다면.
“현재로서는 당내 경선 경쟁자인 유승민 전 의원, 홍준표 의원이다. 그 다음에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고, 그 다음에는 아마 이재명 경기지사가 되지 않겠나. 저로서는 3단계 도약이 필요한 셈이다. 도약할수록 더 큰 힘이 합세하기 때문에, 자력으로 이겨내야 하는 첫 번째 도약이 가장 힘들 것 같다. 그래도 자력으로 그 짐을 지고 일어날 수 있다고 자신한다.”
“꼰대국가, 꼰대정당 탈피해야”
-윤 전 총장에 대한 평가는.“검찰총장으로서는 역대급 총장이다. 그 정도 강단과 돌파력을 보여준 사람은 많지 않다. 또 지금 야권에도 많은 활력을 불어넣어 줬다. 다만 최종 주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항 속 물고기처럼 국민에게 검증을 받아야 하고, 치열한 경쟁도 거쳐야 한다.
그 과정의 막강한 경쟁자는 아마 원희룡일 것이다. 과거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이 그랬듯이, 막강한 경쟁자라는 것은 가장 강력한 협력자일 수도 있다. 지지자만 보는 정치를 하면 현 정부와 똑같이 팬덤 정치에 빠지게 된다. 사람들을 알아보고, 사람들을 움직여서 집단적인 힘을 만드는 게 정치인데, 그런 면에서 윤 전 총장은 앞으로 열 달 내내 정치력 시험대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이다.”
-국민의힘 쇄신 문제에 대한 입장이 있다면.
“당의 혁신 방향은 분명하다. ‘중·중·중’으로 돌리라는 것이다. 중도, 젊은층, 전국정당으로 가야한다는 게 이미 답으로 나와 있다. 당이 강경 지지층의 지지나마 유지해 보려고 퇴행적 모습을 보인 것에 대해 국민들은 아주 질려있다. 그런 걸 자꾸 되살리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내부에서부터 단호한 선긋기가 있어야 한다.”
-2030 세대를 안기 위한 정책 방향이 있다면.
“2030에게 뭘 주겠다는 식의 접근은 결국 실패할 것이라고 본다. 2030은 과거와 같은 수직적 억압이나 이중적 사회·문화 구조 속에서 자라지 않았다. 돌직구 같은 정직한 문화를 갖고 있다. 진정성과 진지함을 갖고 2030의 세상과 가치, 이들의 아이디어를 국정에 최대한 받아들이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꼰대국가’ ‘꼰대정당’을 탈피해야 한다는 말이다.”
지호일 백상진 강보현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