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윤여정은 자신의 영화 데뷔작을 연출한 고(故) 김기영 감독을 수상 소감에서 빼놓지 않았다. 수많은 작품에 출연한 윤여정에게 김 감독은 어떤 의미였을까.
윤여정은 25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열린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마치며 “김기영 감독님에게 감사하다. 나의 첫 번째 영화를 연출한 첫 감독님”이라고 소개한 뒤 “그는 천재 감독이다. 여전히 살아계신다면 수상을 기뻐해 주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감독은 1955년 영화 ‘주검의 상자’로 데뷔했다. 73년 제9회 백상예술대상 영화감독상, 71년 제8회 청룡영화상 감독상 등을 수상했다.
60년 영화 ‘하녀’를 시작으로 ‘화녀’(1971) ‘충녀’(1972) ‘화녀 82’(1982) ‘육식동물’(1984)로 이어지는 하녀 시리즈를 연출했다. 자신의 영화를 10년 주기로 변주한 셈이다. 중산층 가정에서 벌어지는 하녀와 본처의 대결이 주된 내용이다. 윤여정은 ‘화녀’에 이어 ‘충녀’에서 김 감독과 함께 했다.
윤여정은 김 감독과 ‘화녀’ 촬영 전 여러 번 만나며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영화 시작도 전에 감독과 일대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촬영하면서는 ‘그때 지었던 표정을 지어 보라’며 섬세한 연기지도를 해 감탄했다는 일화도 있다.
김 감독은 국내 전무후무한 표현주의 감독으로 꼽힌다. 화려한 색감을 주로 사용했고, 편집이나 음향도 당대의 어떤 영화와도 차별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의 작품들은 박찬욱, 봉준호 등 많은 영화감독들에게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실제 봉 감독은 2019년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김 감독을 언급하며 “아마 영향을 받았을 거다. 내가 워낙 마니아였고 그분의 영화를 처음 제대로 접한 게 예전에 케이블 유료 채널을 통해서였다. 그때 영화를 보고 광분 상태가 됐다”고 했다. 그는 “김 감독님이 살아계시다면 이 영화를 보여드리고 싶다”고도 했다.
봉 감독은 영화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72회 칸 영화제 폐막식에서도 “이번 수상으로 아시아에 일본의 구로사와 아키라, 중국의 장이머우 감독만 있는 게 아니라 고 김기영 감독처럼 한국에도 외국 거장을 능가하는 마스터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고 언급했다.
김 감독은 82년 서울 명륜동 집에서 불이 나 사망했다.
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