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의 아픔을 보듬고 배려하지 않으면, 사랑이 자라고 단단해질 수 없겠더라”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로 다큐멘터리 영화의 획을 그었던 진모영 감독이 15일 화상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진 감독은 지난 13일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님아: 여섯 나라에서 만난 노부부 이야기’를 가지고 돌아왔다.
진 감독은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으로 한국 편 정생자·조영삼 부부와의 만남을 꼽았다. 그는 “부부의 사랑스러운 장면들을 열심히 기록하면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돌아보면 사랑이 커가고 단단해지려면 상대방의 아픔을 배려하는 게 전제가 돼야겠더라”며 “부인이 과도하게 일을 할 때, 남편이 알면서도 표현하지 않고, 그걸 돕기 위해서 끊임없이 부인을 이해하려는 순간들이 연출될 때 많이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랑이 어느 순간에 달콤한 행동이 나열됐다고 생각하는 것이, 상대의 아픔을 보듬어줄 수 있는 것이라고 느꼈다”며 “그런 부분에서 좀 더 이야기가 깊어졌다”고 덧붙였다.
정생자·조영삼 노부부를 찾아 나서는 과정도 쉽지만은 않았다. 진 감독은 “두 분이 오랜 시간 사랑스럽게 살아야 하고 나이가 어느 정도 있으셔야 하는 등 조건이 생기면서 문이 좁아지니 처음에는 그분들을 찾을 수 있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3~4개월 동안 많은 지역을 돌아다녔는데, 어떨 땐 ‘이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고 조용히 물러나고, 어떤 부부는 나랑 하자고 집요하게 해서 고전했다”고 말했다. 이어 “완주에서 알던 홍보 담당자가 ‘자기 지역에 부부의 날 행사를 수년째 해서 직접 경험한 분들이 있는데 한 번 만나보면 반드시 하게 될 거다’라고 말해서 긴가민가한 마음으로 찾아갔다”며 “처음 뵀는데, 따뜻한 온기가 있는 부부라서 두 번 생각할 필요 없이 이분들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코로나 시대에 공개가 된 터라 진 감독의 감회도 남달랐다. 그는 “코로나 시대를 정의하는 것 중 제일 큰 것이 가족들하고 굉장히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것”이라며 “‘님아’ 시리즈에 ‘사랑의 교과서’라는 표현을 즐겨 썼는데,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과 어떻게 소통하고 배려할까 좋은 지침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6편의 각각 다른 6명의 감독의 개성이 묻히거나 ‘님아’의 주제가 흐려지는 건 아닐까. 진 감독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에서 시작한 거라 비슷비슷한 콘텐츠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각자 감독의 개성과 그 나라의 문화도 드러났다”며 “하나씩 보면 이게 ‘님아’의 시리즈인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전체를 다 보고 나면 역시 이 시리즈가 ‘님아’ 원작에서 시작한 덩어리였구나라고 말씀을 주시더라. 마음도 놓이고 기분도 좋은 순간이었다”고 설명했다.
심심하고 담백한 다큐멘터리를 연출하는 소신에 관해 묻자 그는 “콘텐츠에서도 다양함이 중요하다”라며 “어렸을 때 굉장히 획일적인 사고들을 하면서 자랐고, 나와 다른 것 자체가 비난받거나 공격을 당하는 그런 시대의 일원이 돼서 살았다. 지금도 그런 부분에서 100%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님아 시리즈’는 넷플릭스 안에서도 굉장히 독특한 위치를 지키고 있다”며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콘텐츠의 자잘한 모습들을 보물찾기하듯 찾아내는 요소들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음식의 다양한 맛을 찾는 재미만큼 콘텐츠를 찾는 사람들의 마음도 다른데, 이런 걸 재밌게 보는 사람들이 있고 그래서 존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행보에 그는 “아직 차기작에 대한 계획은 없다”며 “정말 다양한 나라와 지역의 사람들이 그들이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개성 있는 이야기를 계속 보여드리고 싶다”며 “‘님아’는 주는 휴식과 평화로움이 다르므로 꾸준한 사랑으로 롱런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님아’ 시리즈를 있게 만들어준 강계열 할머니의 소식도 전했다. 진 감독은 “강계열 할머니께선 올해 96세가 되셨는데, 제가 찍을 때 89세셨으니 시간이 참 빠르다”며 “지금은 횡성 읍내에서 딸과 사시는 데 노래교실을 좋아하시고 한글도 배우고 싶어하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처음 계약서에 사인하셨을 때는 딸들이 쓴 글 위를 그리듯 하셨는데, 지금은 길가에 있는 간판도 다 읽으시고 재밌어하시더라”라며 “제가 ‘할머니·할아버지로 시작된 이야기니까 이번 작품 한국판 타이틀을 직접 써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먹이라 붓을 직접 사다가 시원시원하게 써주시더라”고 전했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